*덕화만발* 덕향만리
*德華滿發*
덕향만리
꽃에는 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각의 인품이 존재하지요. 꽃은 싱싱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품 또한 사람의 마음이 맑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난향백리(蘭香百里),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묵향천리(墨香千里),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향만리(德香萬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에 대비해 자신이 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인들이 추천해 준 몇 곳을 다녀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집값이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을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했습니다. 그 집의 원래 가격은 백만금이었지요. 이 얘기를 들은 이웃집의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했고(百萬買宅), 천만금은 여승진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千萬買隣)이라고 답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데는 집값의 열배를 더 내도 아깝지 않다는 의미이지요. 그럼 우리는 지금 어떤 향기를 피우고 있을까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덕 있는 자의 모습은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인품의 향기가 만 리 까지 실어 나르는 뜻이 아닌가요?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가장 소중하고 또 오래갑니다. 그럼 좋은 이웃, 좋은 친구는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널뛰기를 할 때 내가 높이 올라가려면 상대를 더 높이 올려주어야 합니다.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격이 높아지려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격을 더 높이 올려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남을 험담하고 깎아내리며 자신이 높아지려는 것은 소인배들이 하는 짓입니다. 덕 향 보다 더 향기로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향기는 바람을 만나면 사라지나 덕 향은 바람도 뚫고 갑니다. 부드럽지만 또 무엇보다 강하기도 한 것이지요.
전남 여수에서 덕을 베풀어 가문의 명성과 목숨을 지킨 명문가가 있었습니다. 봉소당(鳳巢堂)은 구한말에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번 1만2천석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난 척 하지 않고 늘 가난한 과객과 소작인들을 후하게 대접했지요. 그런데 아홉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소작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소작인이 있었습니다. 그 처지가 딱하다고 그냥 눈감아 주면 다른 소작인들도 다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많은 소작인들에게는 수백 가마의 쌀을 배에다 싣고 내리는 하역작업을 맡겼습니다. 그 대가로 소작료를 면제해주면 다른 소작인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없었지요. ‘여수 · 순천사건’이 났을 때 여수에서 가장 부잣집인 봉소당의 11대 후손인 김성환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제일 먼저 좌익들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좌익의 대장이 바로 그 소작인의 아들이었지요. 김성환이 끌려오자 그 대장은 옆에 있던 2명의 호위병들에게 “밖에 나가 있어”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 아무 말 없이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침묵 상태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습니다. ‘끌고 왔으면 심문을 해야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벽을 향해서 신문만 보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김성환은 30분쯤 지날 무렵 도망가라는 뜻으로 판단하고 창문을 통해 야산으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습니다. 소작인의 아들은 직책상 대놓고 “도망가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그렇다고 자기 조부 때부터 은혜를 입은 봉소당 아들을 죽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국밥 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와 할머니가 들어와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에게 그 국밥을 건네고는 맞은편에 앉아 깍두기 한 개만 오물오물 드시며 손자의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셨습니다.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계산대로 오십니다. 옷 속 이곳저곳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는 것을 보고 주인은 안쓰러운 마음에 돈을 안 받고 싶었는데 혹시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은 “할머니 오늘은 돈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100번째 손님에게는 공짜로 국밥을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와 손자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그 국밥 집 건너편에 한 아이가 앉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 바닥에 큰 원을 그려놓고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 할머니와 함께 온 그 아이였습니다. 손님이 한 명씩 올 때마다 큰 원에 돌을 던져 넣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국밥을 드시게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까 공짜 손님으로 들어갈 걸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돌멩이가 몇 개 없었습니다. 실망한 아이의 얼굴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국밥집 주인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 김 사장, 우리 국밥 집에 손님들 좀 많이 데리고 와, 내가 공짜로 먹여 줄 테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이 와야 해” “박 선생님, 오늘 우리 집에 오셔서 국밥 좀 드시죠. 제가 오늘 쏩니다. 친구 분들 좀 많이 모시고 오세요.”
조금 지나자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옵니다. 아이의 손이 빨라집니다. 돌멩이가 늘어납니다. 40, 50, 60, 99개가 되자 급히 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가 백 번째 손님이지요?” 아이는 할머니 앞에 국밥을 놓고 자신은 깍두기를 오물거리며 할머니가 드시는 것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국밥집 주인 역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도 아름답고 또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국밥집 주인의 마음입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감동의 이벤트를 준비한 주인의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덕인의 마음입니다.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갑니다. 이 세상에서 덕 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덕인은 매양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조심하고 챙기는 사람입니다. 우리 ‘덕향만리’ 덕인의 길을 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48년, 서기 2015년, 불기 2559년, 원기 100년 1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다음카페 덕화만발(德華萬發)클릭→http://cafe.daum.net/duksan725】 《*덕화만발* 토 일요일 공휴일은 이메일 발송이 어려워 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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