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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金成官 황금웃음 2015. 1. 27. 06:53

*德華滿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잠자 코나 있어야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얄팍한 속임수를 쓰며 도리어 고함을 지르니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 1548~1631)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사간을 지낸 석당 김상정(金相定 : 1722~1788)이 지은『석당유고(石堂遺稿)』「치재설(恥齋說)」에 보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글은 맹자가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恥之於人 大矣]”라고 한 말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한 말을 부연해서 설명한 글입니다.

 

문화재청에서 발표한「삼강행실도」에 이「치재설」서문에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나옵니다. 우리 한 번 살펴볼까요?

 

【가장 좋은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것이다.

 

무릇 사람의 걱정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으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 하지 못하는 짓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는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된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말과 행동이 가끔은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미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또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았다면 또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부끄러운 행실이 있는데도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지 못하면, 부끄러운 행실이 있는 데에서 끝나게 된다.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면서도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지 않는다면, 역시 부끄러운 행실인 줄을 알아서 부끄러운 행실을 고칠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귀한 것이며,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을 따져보아서 이렇게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의 제대로 된 사람이다.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고 없애어서 부끄러운 행실이 적게 하는 데에 이르고, 부끄러운 행실을 적게 하고 적게 하여서 부끄러운 행실이 없는 데로 나간다면, 이런 사람은 군자이다.】

 

김상정은 이 글에서 부끄러움에 대해,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무치(無恥),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유치(有恥),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지치(知恥),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나가는 거치(祛恥),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과치(寡恥),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무치(無恥)의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와 가장 높은 단계의 무치는 보통 사람들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지요. 그 나머지 유치와 지치, 거치, 과치의 단계는 보통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누구나 애를 쓰면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상정은 또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를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고,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서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게 한다면 군자가 된다고 하였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도리는 별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부끄러운 행실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예전의 선비들 가운데에는 한평생 내내 자신의 행실을 단속하면서 마음공부에 매진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조차도 항상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의 행실을 고치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더구나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상 속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야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혼자 있을 적에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면, 자신이 행한 부끄러운 행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질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평소 행실을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크게 행한 부끄러운 행실을 거론할 것도 없습니다. 우선 이런 글을 쓰는 것만 해도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처지이면서도 글을 쓸 때에는 매번 나 자신의 행실은 돌아보지 않은 채 남들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서는 비난과 비판을 합니다. 그리고 걸핏하면 성인들의 말을 끌어대고, 선현들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들을 본받으라고 하지요.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이렇듯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있습니다. 비록 부끄러운 짓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제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면서 잠시나마 저의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다잡은 마음을 비록 꾸준하게 견지해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은 이를 실천하고자 애를 쓰지요. 잠시나마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행실을 고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실을 조금이나마 줄여서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 런지요!

 

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종사님께서는 부끄러움에도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되 묻기를 부끄러워함은 우치(愚恥)입니다. 그리고 나타난 부족과 나타난 과오만을 부끄러워함은 외치(外恥)이지요. 또 양심을 대조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의로운 마음을 길이 챙김은 내치(內恥)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비록 지금까지는 다소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더라도 이제부터는 이 삼치(三恥)는 면해야 양심이 편안해 두 다리 쭉 뻗고 잠들 수 있지 않을 까요!

 

단기 4347년(2014) 12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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