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華滿發*
청복(淸福)
청아(淸雅)하고 한가(閑暇)하게 사는 복을 청복(淸福)이라 합니다. 아마 이 세상의 복 중에 이 보다 더 좋은 복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신선(神仙) 복이니까요. 그러니까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마음 편하게 살면 최고라는 뜻이 아닌지요?
풍석(楓石) 서유구(徐有[矩 : 1764~1845)가 쓴《임원경제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선비들의 취미, 오락, 여행, 예술품감상, 서적을 비롯하여 여가와 취미생활을 전문적으로 다룬 <이운지(怡雲志)>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네 명의 선비가 우연히 상제(上帝)님을 만나 각자의 소원을 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높은 벼슬을, 두 번째 사람은 큰 부자를 소망하였지요.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뛰어난 작가가 되어 명성을 드날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문화적 욕구를 드러낸 소망인데 고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명예욕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망이 뜻밖이었습니다. 이름 석 자 쓸 수 있고, 밥 굶지 않으며, 헐벗고 지내지 않는 처지만 되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그러니 교양 없이 사는 사람이 되지 않은 채 시골에 묻혀 한 평생 살고자 한다는 뜻이지요. 그 말에 상제는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런 청복(淸福)은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니 다른 소원을 말하라”며 들어주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사람의 소원이 가장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어렵고, 그런 행복은 전지전능한 옥황상제도 누리기 힘든 청복이라는 것입니다. 소원이라는 것은 지금 나에게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염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도 갖추기 어려운 것들이 소망이지요. 하지만 이 고전의 예화를 보면 우리의 생각을 뒤집습니다.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라는 것이 진리 아닌가요?
여기서 상제가 세 사람의 부귀영화라는 허망한 욕심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한사람의 그냥 평범한 삶의 소원은 들어주기 어렵다며 들어주지 않은 것이지요. 어쩌면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욕심내지 않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며, 삶의 여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게 이른바 청복이라는 것입니다. 청복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이지만, 하늘이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사람이 누리는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으로 나눴습니다. 열복은 누구나 원하는 그야말로 화끈한 복이지요. 그러니까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열복입니다. 열복을 누리면 모두가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 눈짓 하나에 다들 알아서 깁니다.
그러나 청복은 욕심 없이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야 넉넉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아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조선 중기 송익필(宋翼弼)은 ‘족부족(足不足)’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만족하고,/ 소인은 어이하여 언제나 부족한가./ 부족해도 만족하면 남음이 늘 상 있고,/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넉넉함을 즐긴다면 부족함이 없겠지만,/ 부족함을 근심하면 언제나 만족할까.
부족함과 만족함이 모두 내게 달렸으니,/ 외물(外物)이 어이 족함과 부족함이 되겠는가./ 내 나이 일흔에 궁곡(窮谷)에 누웠자니,/ 남들이야 부족타 해도 나는야 족하도다./ 아침에 만봉(萬峰)에서 흰 구름 피어남 보노라면,/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높은 운치가 족하고,/ 저녁에 푸른 바다 밝은 달 토함 보면,/ 가없는 금물결에 안계(眼界)가 족하도다.」
어떻습니까? 청복을 누리는 삶이요! 다산은 “세상에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하늘이 참으로 청복을 아끼는 것을 알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청복은 거들떠보지 않고, 열복만 누리겠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남들 위에 군림해서 더 잘 먹고 더 많이 갖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다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열복은 항상 중간에 좌절하거나 끝이 안 좋은 것이 문제지요. 요행히 자신이 열복을 누려도 자식 대까지 가는 경우란 흔치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러르고, 아름다운 미녀가 추파를 던집니다. 마음대로 못 할 일이 없고, 뜻대로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어느새 마음이 둥둥 떠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지요.
후끈 달아오른 욕망은 제 발등을 찍기 전에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금방 형편이 뒤바뀌어 경멸과 질시와 손가락질만 남습니다. 그때 가서도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기는커녕 주먹을 부르쥐고 두고 보자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기만 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청복을 알기나 하겠는지요?
요즈음 조현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 재벌의 딸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정도와 파장이 너무 심각합니다. 한 마디로 대한항공만의 망신은 아닐 것입니다. 이 나라 재벌들의 의식세계가 아마 이와 별로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재벌만이 아닙니다. 조금 가졌다는 사람들의 망국적인 사고방식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복을 누리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슈퍼 갑 질’의 횡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겸양 이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양보합니다.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完名美節 不宜獨任 分些與人 可以遠害全身 辱行汚名 不宜全推 引些歸己 可以韞光養德. 완전한 명예와 이름다운 절개는 혼자만 차지해서는 안 된다, 조금 나누어서 남을 주면 몸의 해침에서 보전할 수 있고, 욕된 행실과 더러운 이름은 모두 남에게 미루지 말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돌아보면 밝히 살며 덕을 기를 수가 있다.」
어떻습니까? 열복이라도 다 차지하면 재액(災厄)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나누며 살고 더불어 살아야지요. 그리고 복이 다하면 타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제일 귀한 사람입니다. 청복은 신선이 누리는 복입니다. 옥황상제도 누리기 어려운 복이지요. 우리 욕심을 버리고 청복을 누리는 귀인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47년(2014) 12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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