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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보국 ‘용광로 정신’ 한국산업 큰 별로 남다

金成官 황금웃음 2011. 12. 20. 09:56

제철보국 ‘용광로 정신’ 한국산업 큰 별로 남다

이코노믹리뷰 | 한상오 | 11.12.20 09:35

철강왕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1927~2011)에 대한 애도 행렬이 전국에서 줄을 이었다. 고인은 탁월한 통찰력, 신속한 판단력, 강력한 추진력을 조화시킨 역동성의 리더십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대한민국 산업계에서 영원히 지지않는 큰 별이 됐다.

"당신은 가셨지만
영일만의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세계적인 철강신화를 일구어 낸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의 각오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지난 13일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박 명예회장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0년 전 수술했던 흉막섬유종 휴유증으로 흉막 전폐절제술을 받고 입원 가료 중이었다.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진행됐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짧은 인생을 영원히 조국에'라는 좌우명으로 일생을 살아왔다. 사람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설계하고 자기 영역의 전체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는 꿈을 꿨다. 그래서 철(鐵)에 목숨을 걸었다. 그에게 철은 곧 국가였다. 포스코의 오너는 아니었지만 철이 국가였기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그는 1960년대 철강불모의 이 땅에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성장시킨 한국 철강산업의 큰 별이다. 소위 '철강왕'이라 칭송받는 미국의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연산 조강 1000만t을 이뤘지만 박태준은 당대 25년(1968~1992년) 안에 연산 조강 2100만t을 일궈냈다. 기술력과 자본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카네기보다 짧은 기간에 그 두배가 넘는 규모로 키워낸 것이다. 현재 포스코는 연산 3700만t 규모의 조강 생산을 기록하는 세계 4위권의 철강사로 성장했다.

포스코가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박태준이라는 걸출한 리더의 헌신적인 리더십이 보태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1978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은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신일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포스코의 DNA인 같은 '제철보국'과 '우향우 정신'은 그가 건설 초기 철강 역군들을 하나로 만드는 공동의 좌우명이 됐다. 이 땅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경쟁력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은 포스코의 설립 근거가 됐다. '우향우 정신'은 선조의 피 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며,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한국이 군대가 필요했을 때 장교로 투신하고, 한국이 현대경제를 위해 기업인을 찾았을 때 기업인이 되고, 한국이 미래의 비전을 필요로 할 때 정치인이 되어, 한국에 봉사하고 봉사하는 삶이 끊임없는 지상명령이었다고 평가한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처럼 평생을 한결같이 조국 발전에 헌신했던 박 명예회장은 32대 국무총리를 맡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을, 1987년에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함으로써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3개의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4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