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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영광의 역사 -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다

金成官 황금웃음 2008. 4. 3. 18:30
[POSCO 창립 40주년] ■ 되돌아본 영광의 역사 -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다

용광로 불꽃 광양만으로 옮겨 ‘또 한번의 기적’
1988년 국민주 1호 기업 공개 … 국민기업 일신
  

1992년 10월 2일 포스코는 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어느 한 가지 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4반세기 만에 연간 2100만톤 규모의 조강생산능력을 지닌 포항·광양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대역사를 이뤄 냈다.

 

 

<3면에 이어>

1977년 8월 박태준 사장은 발전송풍시설 기초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부실공사의 흔적을 발견해 이를 폭파시키고 재시공토록 했다. 공사품질을 확보하려는 최고경영자의 의지는 이후 광양제철소 건설에서도 이어졌다.

이러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확장 사업을 계속한 결과 포스코는 1981년 2월 18일에는 4기 설비를 종합준공함으로써 조강연산 850만톤 체제를 구축하고 세계 11위의 대단위 일관제철소로 우뚝 섰다. 또한 1981년 9월 1일 포항 4기 2차 설비 공사에 들어가 1983년 5월 25일 준공함으로써 조강연산 규모를 910만톤으로 확대하고, 각종 설비의 신예화와 스테인리스사업 추진을 통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했다.

포스코의 성공적 건설과 조업을 통해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으로 발돋움한 포스코는 영일만의 대역사를 일단락짓고, 다시금 세계 최고의 제철소로 성장하기 위한 역정에 나섰는데 이것이 바로 광양제철소 건설이다.

 

바다 위에 세계 최신예 제철소

 

제2 제철이 처음 거론된 것은 포항 1기 건설이 한창이던 1972년 초였다.

1977년 정부는 다시 제2 제철 건설을 추진했는데 1978년 10월 30일 포스코가 제2 제철 실수요자로 결정됐다. 이로써 포스코는 축적된 경험과 변함없는 사명감으로 광양제철소를 세계 최신예 제철소로 건설하는 데 진력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며 겪은 어려움이 부족한 자금·기술·경험이었다면 광양제철소를 건설하면서 겪은 최초의 난관은 세계 철강업계의 견제였다. 그러나 포스코는 이러한 난관에 봉착해 설비구매선을 그동안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으로부터 유럽 국가로 다변화하는 등 국제적 견제에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도약의 역량을 축적해 나갔다.

포항제철소와 달리 광양제철소는 바다를 메워 육지로 만든 뒤 그위에 제철소를 세움으로써 부지조성에서부터 획기적이었다. 포스코는 1985년 3월 5일 광양제철소 1기 설비를 종합착공한 이래 포항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 광양제철소를 속속 완공, 1990년 12월 4일에는 3기 설비를 준공함으로써 조강연산 1750만톤 규모의 세계 3위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이후 1992년 10월 2일 광양제철소 4기 설비를 종합준공함으로써 조강연산 2100만톤 체제를 구축해 최적 규모의 제철소 건설을 실현했다.

한편 포스코는 1988년 6월 10일 전 국민의 관심 속에 국민주 1호로 기업을 공개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엄격한 자격제한을 통해 주식 청약을 받은 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배정함으로써 포스코는 중하위 소득계층과 경영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고 명실상부한 국민기업의 면모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