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뚞심있어야 부자된다

행복의 조건

金成官 황금웃음 2016. 3. 3. 18:46


*德華滿發*

 

행복의 조건

 

 

사람들마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드문 것일까요? 아마 그건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동물은 욕망을 채우고 나면 더 이상 탐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욕망을 채우고 나면 더 큰 욕망을 탐하지요. 그래서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럼 행복한 사람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 런지요? 어차피 채울 수 없는 욕망이라면 조금 부족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조금은 모자라는 듯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가장 현명한 삶이고 남들이 볼 때도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비워있어야 채을 수 있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꽉 차있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지요. 그러니 행복한 사람은 조금은 비어있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욕망을 조금 줄이고, 하고 싶은 일도 조금 줄이며 약간 불편해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일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물질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추구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좀 더 예뻐지면 행복해질 것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건강하면 행복해 질 것이다.’ ‘멋진 사람을 만나 혼인을 하면 행복해 질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인간의 욕망을 채운다한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행복을 얻게 되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참으로 값진 행복은 고난과 부족함에 부딪히고 깨질 때에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섰을 때 맛볼 수 있는 기쁨이 진정 행복일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 부족한 것'에 크게 기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만약 내 마음을 괴롭히는 대상이 있다면 그 고통에 사로잡혀 슬퍼하기 보다는 미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높은 이상과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발밑에 놓여있는 불행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되새겨 보는 것도 행복의 조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만히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행복의 평범한 조건을 끄집어내어 감사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행복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모르고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찾아 평생을 방황하지요.

 

플라톤은 “행복(幸福)이란 만족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으면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어떤 일을 하든 그건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相對的)인 결핍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 플라톤이 추구했던 행복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재물(財物)입니다.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을 가지면 행복합니다.

 

둘째, 용모(容貌)입니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정도의 용모를 지니면 행복합니다.

 

셋째, 명예(名譽)입니다.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넷째, 체력(體力)입니다.

남과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이면 행복합니다.

 

다섯째, 언변(言辯)입니다.

청중이 나의 연설을 듣고도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어떻습니까?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만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조금은 미흡(未洽)하고 모자란 상태를 말합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긴장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플라톤은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릇 가난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나 부족한 것을 이름입니다. 얼굴이 부족하면 얼굴가난이요, 학식이 부족하면 학식가난입니다. 그리고 재산이나 명예가 부족하면이 역시 가난뱅이이지요. 우리가 이미 받는 가난에 안심하지 못하고 이를 억지로 면하려고 하면 마음만 더욱 초조하여 오히려 괴로움이 더하게 됩니다.

 

세상만사가 다 뜻대로 만족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고 천년만년 영화(榮華)를 누리려는 사람과 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낍니다. 또한 십 분이 다 뜻에 맞는다 할지라도 그 만족할 일을 혼자 차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깁니다.

 

그러므로 그 얻은 것으로 인하여 재앙(災殃)을 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복도 항상 무궁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면할 수 없는 가난이라면 태연히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혜(慧)와 복(福)을 준비하는 것으로 낙(樂)을 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아닐 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