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삶
요즘 나라에서는 부패를 척결한다고 온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대표적인 비리로 떠오른 것이 <사자방>이지요, 사대 강사업과 자원외교부실, 방위산업부정 등을 말합니다. 그에 따라 포철,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등등 그 비리는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뽑아져 나옵니다, 과연 이러고도 나라가 유지 된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처럼 여겨집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탐욕(貪慾) 때문입니다.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 키루스 왕(Cyrus the Younger)은 아케메네스 제국 다리우스 2세의 왕자였습니다. 혁신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는 생각의 소유자 키루스! 그런데 키루스의 혁신은 철저한 자기 훈련에 기초를 두고 있었지요. 그는 어릴 때부터 또래들보다 고난을 더 잘 견뎠고, 부친의 교훈을 따라 어른들을 공경했으며, 권위를 존중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는 치솟는 욕망을 제어하고 방종을 피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과식하지 않았으며, 군살 없는 강인한 체력을 유지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는 재물을 축적하지 않고 측근들과 나누는 데 힘썼습니다. 또 조직을 이끌 때 부드럽고 활기찬 조직을 만들어 그 조직의 연대감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최하층 민일지라도 과업을 잘 수행하기만 하면 조직의 일원으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키루스는 용기와 지혜를 넘어 관대한 자비와 겸손한 신앙까지 갖춘 군주였지요. 그런데 키루스왕의 인생은 여기까지가 최고의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정복자로 과욕과 과신의 덫에 걸리고 만 것이지요. 키루스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넓혔고,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말년에는 기마민족 계열의 마사게타이족 정벌에 나서 처음에는 파죽지세로 몰아 다 이긴 전쟁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마사게타이족의 분노에 걸려들어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만 것입니다. 과욕으로 인해 결국 그 많은 땅을 확보하고도 전쟁터에서 모든 군대를 잃게 되었고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습니다. 더 좋은 것, 새로운 것 그리고 더 아름다운 것을 찾아 헤맵니다. 우리는 이 ‘더’ 때문에 늘 바쁘고 외롭고 불안합니다. 만약 우리가 ‘더’가 아니라 최고를 찾고 그것을 갖는다면 우리는 더는 초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면서 늘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찾고 바라며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면 언제나 더 좋은 것에서 행복과 기쁨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더 곱고, 좋은 것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내 마음 안에 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 정직, 진실, 성실, 친절 ,순수, 소박, 겸양, 희망, 배려, 용서, 이해, 감사 등 긍정적인 생각! 바로 이런 것들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요?
이런 것들은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고 할 수 있는 작고 평범한 마음속의 생각이며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더 좋은 삶’이 아니라 ‘최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최고의 삶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한 어떤 절차나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 어떤 방법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어떤 방법이든 간에 마음을 비우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마음공부 또는 수행(修行)이라 하지요.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무념무상(無念無想) 또는 무심(無心)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은 물론 긍정적인 생각마저 버린 즉, 희로애락을 초월한 상태를 말함이지요.
이렇게 되기는 성직자들도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우리들같이 가정과 직장,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권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만은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범부가 기쁨과 즐거움도 없다면 사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생각이라는 것은 의도하지도 않는데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이기에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났을 때 그 생각을 계속하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사람은 감정적이기 쉽기에 좋지 않은 생각일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때 이성적으로 이를 차단하자는 것입니다. 좋지도 않은 생각은 되새길수록 자신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생각을 중단해버리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소의 생활을 이성적으로 하자는 뜻이지요.
그리고 평소에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함은 물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도 이것을 지워버리고 다른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하자는 것이지요.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항상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긍정적인 생각의 하나입니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일상생활에 항상 감사하고 근심, 걱정은 묻어버리고 살고 있는 사실에 스스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즐거우며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긍정적인 방법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멀리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몰두, 몰입할 수 있는 어떤 보람 있는 일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얼른 이 일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 보람 있는 일이란 자신의 내면을 충실하게 만드는 일이라도 좋고 혹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좋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삶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덕을 쌓거나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인생은 고락(苦樂)이 반반이라 했습니다. 삶에는 괴로움이 있는가 하면 즐거움도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움이 괴로움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괴로움도 즐거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을 때 즐거움이 될 수가 있고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느끼지 못할 때 괴로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괴로움이나 즐거움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행복이나 불행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인간의 행, 불행은 거의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행복해질 수가 있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비워져 있어야 수월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탐욕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요란하지 않게, 어리석지 않게, 그르지 않게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좋은 삶’을 너머 ‘최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요!
단기 4348년, 불기 2559년, 서기 2015년, 원기 100년 3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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