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질병의 대부분은 그 원인이 복합적이고 모호한 편이다. 유전적 요인, 심리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정신적 질병 중에서도 그 원인이 명확한 경우가 있다.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이다. 이는 재난, 범죄, 사고, 전쟁, 학대 등 인간의 보편적 적응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에 생겨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보통 사건 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외상으로 인해 과도한 불안과 외상의 재경험에 시달릴 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진단을 내린다.
그런데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고 해서 누구나 PTSD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발생한 지 6개월 안에 서서히 예전의 상태를 회복해간다. 이들은 쉽게 말해 ‘외상 후 회복(PTR : Post-Traumatic Recovery)’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힘들어하는 것도 아니고 회복되는 사람들도 아니라면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바로 ‘외상 후 성장(PTG: Post-Traumatic Growth)’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원하지 않는 불행과 고통을 겪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고 이를 계기로 이전의 삶보다 더욱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외상 후 회복이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회복탄력성이 낮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게 되고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외상 후 회복 혹은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이 회복탄력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물리학에서는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의미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50년대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에서 펼쳐진 종단연구로부터 비롯되었다. 원래 이 연구는 가정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이 인간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출생에서부터 조사하고자 했던 야심 찬 시도였다. 이 연구의 자료 분석을 담당했던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관찰 대상자 833명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고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극빈층에서 태어났고, 태어날 때 크고 작은 질병을 겪었고, 부모의 불화는 심했으며, 한쪽 혹은 양쪽 부모가 알코올 중독과 같은 정신적 문제를 둔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자라면서 문제아가 되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릴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다수는 그렇게 성장하였다. 그런데 에미 워너의 관심을 끈 것은 72명이었다. 고 위험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난 것이다. 심지어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보다 더 모범적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었다. 에미 워너는 이들에 집중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이 다르기에 비슷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이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불렀다.
당신은 유리 공인가? 플라스틱 공인가? 아니면, 고무공인가?
회복탄력성은 꼭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지 않더라도 인생의 역경과 고난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고무공처럼 이러한 역경과 고난을 통해 더욱 튀어 오를 수 있지만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어려움 앞에서 유리공처럼 깨져버리기 쉽다. 그리고 보통의 회복탄력성이라면 플라스틱 공처럼 깨지지는 않지만 형태의 변형이 있을 수 있어 시간이 지나거나 다시 누르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워너 교수 이후 학자들은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를 좌우하는 세 가지 큰 요소를 찾았다. 그것은 자기조절능력, 대인관계능력 그리고 긍정성이었다.
회복탄력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그런데 만일 당신이 안타깝게도 유리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만 떨어지면 깨뜨려지기 때문에 평생 조심조심 살아가야 하는가? 다행인 것은 회복탄력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리공이 플라스틱공으로 될 수 있고, 플라스틱 공이 고무공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외상 후 성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훈련하면 시련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지...물론 유전적으로 결정된 부분도 있어 그 향상의 폭과 속도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꾸준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자신의 대표강점을 찾아 이를 향상시킬 것, 둘째 감사 일기를 3주 이상 써보기, 셋째 일주일에 최소 세 번씩 30분 이상 8주 동안 운동하기이다. 이 세 가지 훈련을 통해 우리의 뇌는 보다 긍정적인 뇌로 변해갈 수 있고 회복탄력성은 향상될 수 있다. 나는 정신과의사이자 정신훈련 전문가로서 이러한 실천방법이 사람의 의식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매일 확인하고 있기에 그 방법들을 더욱 더 추천하고 싶다.
지난 100년 동안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관심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 앞으로의 100년은 인간의 마음을 훈련하는 데에 그 관심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등장하여 행복, 창의성, 몰입, 회복탄력성, 강점 등의 긍정적 정신 상태와 이를 어떻게 계발할지에 대해 역점을 두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글 : 문요한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 더 나은 삶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