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웃음으로 기적을

여자를 빛나게 만드는 건 몸매가 아닌 밝은 웃음"

金成官 황금웃음 2008. 3. 25. 18:02
여자를 빛나게 만드는 건 몸매가 아닌 밝은 웃음" 
  어느 날 한국웃음연구소 사무실에 40대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찾아왔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싶었는데, 송년 웃음 콘서트에 참석했던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를 받고나니 기억이 떠올랐다. 앞자리에 앉은 40대 여성한분이 유난히 잘 웃어서
가장 잘 웃는 사람에게 주는 '스마일상'을 드렸는데, 바로 그 분이었다.
  "참 열심히 잘 웃으시더군요."
반가워서 건넨 내 인사에 김명자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소장님, 사실은 제가 암환자거든요. 그런데 웃고 나니 암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명자씨는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모두 잘라낸 암환자였다. 그런데 웃고 난 이후 피곤하지 않았고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김명자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01년 가을이었다.
아픈데도 없었고 아무런 증세도 자각하지 못했던 그녀에게 유방암이라는 진단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마치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는 듯 아무런 감정을 싣지 않은 채,
"유방암입니다. 빨리 수술해야합니다"  라고 의사가 말했을 때 남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그저 멍할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병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빨리해야한다고? 심한상태구나...'도무지 자신의 일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의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암에 걸린 주인공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남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여자로서 치명적인 유방암이라니....하늘이 무너지는 암담함에 그녀는 대기실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10분,20분,....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그 때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단 말인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어머, 암인가 봐' 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그녀도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그들과 같은 눈빛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다른 누군가를 쳐다봤으리라.
평소 김명자씨는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이었다. 그런데 암이라는 암초에 부딪히자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이 찾아왔을까?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들은 점점 더 엄마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할 텐데, 과연 우리 아들이 결혼할 때 까지 살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날 이후 그녀는 건강과 함께 웃음을 잃어버렸다.
아들이랑 즐겨보며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던 개그 프로를 봐도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위로도 귓가를 맴돌 뿐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여보,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어. 우리 같이 힘내자."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살았는데?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이유가 뭐냐고! 이건 분명히 꿈일꺼야. 내가 아주 나쁜 꿈을 꾸는거라고. 그렇지 ,여보? "
남편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더니 마음을 들쑤셔 놓던 감정들이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날부터 명자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신이 이런 고난을 주신데는 분명 큰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라도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렬심히 치료해서 꼭 이겨내리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 암, 그까짓 것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도 암은 암이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장시간에 걸친 수술이 시작됐다.
상태가 심각했던지라 명자씨는 양쪽 가슴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양쪽 가슴을 모두 수술했으니 한동안은 두 팔을 쓸 수 없어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눕지도 못했고 밥을 떠먹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눈에는 아직 마냥 어리고 개구쟁이인 초등학교 3학년생 이들이 엄마를 보살폈다.
엄마를 일으켜주고 밥을 떠서 엄마 입에 넣어주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어설픈 솜씨로 설거지하고 시장도 봐오고....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하는 나이에 엄마의 병수발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이, 아들. 힘들지 않아?"
"음, 괜찮아. 좀 힘들어도 엄마가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
"우리 아들 너무 의젓한 걸.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지 않아? "
"나중에 엄마 다 나으면 그때 나가서 실컷 놀꺼야. 그때 가서 놀면 안된다고나 하지마셔."
의젓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수술 날짜 받아놓고 입원해 있을 때 울면서,
"엄마 죽지마! 이제부터 공부도 잘하고 엄마말도 잘듣는 착한아이 될께. 그러니까 죽지마 "
라고 말하며 엄마 품에 와락 안겨서 엄마 눈물을 쏙 빼놓았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하나님, 우리엄마 살려 주세요. 우리엄마 데려가지 마세요"
라며, 눈물범벅이 되어 기도했던 소중한 아들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퇴근하고 돌아오면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을 치웠다.
평소에는 설거지한번 하라고하면 피곤하다며 온갖 핑게를 대던 그였지만
아내의 투병생활로 세탁기정도는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되었고,
계란프라이와 된장찌게를 끓여 그럴 듯하게 상을 차릴 줄 아는 초보 주부가 되어갔다.
아들과 남편을 보면서 명자씨는 더 살고 싶어졌다.
명자씨 혼자서 밥숟가락을 뜰 수 있을 때 쯤 항암치료가 시작 되었다. 암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이토록 잔인하고 치열한 투쟁인지 그녀는 상상도 못했다. 처음 얼마동안은  구토와 울렁거림으로 먹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마음껏 먹지도 못하는데 그것마저 다 토해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이번에는 근육통이 온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의 당혹감이란......

  “ 여보, 나 머리카락 빠져.”
다음날 남편은 모자를 2개 사와서 명자씨 머리에 직접 씌워주었다. 
   “와~ 당신 모자쓰니까 정말 예쁘다. 이렇게 예쁜데 왜 여태 모자를 안쓰고 다녔을까?    한길아, 엄마 예쁘지? ”
옆에서 아들도 거들었다.
“응! 우리엄마 정말 예쁘다.”
  명자씨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라도 씩씩하게 이겨내리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아무리 자신이 힘들어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 또한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미어져 나오는 고통을 참으려고 했다. 그러나 암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통 그 자체도 견디지 못할 만큼 괴로웠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한 공포였다.
  식사시간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도통 몸에서 밥을 받지 않았다. 쓰디 쓴 약을 삼키듯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사력을 다해서 삼켰다. 살아있는 순간순간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왔다. 하지만 살아야했다. 반드시 살아야했다. 머리카락이 없고 병색이 완연한 엄마를 보고도 우리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아들을 슬프게 할 수 없었기에, 나중에 아들이 커서 참한 처녀와 결혼하는 거도 보고 손자도 안아보고 싶었기에 반드시 살아야 했다.

‘ 암을 물리칠 특별한 방법이 없을 까? ’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명자씨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수술도 중요하고 항암치료도 꼭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즐겁지 않은 게 문제였다. 명자씨는 암세포가 빼앗아버린 웃음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자씨는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을 웃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명자씨 가족은 웃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찾은 유머를 저녁마다 들려주었고 , 아들은 하루종일 꼼짝 못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손짓발짓해가며 열심히 이야기 해주었다. 정 재미있는 일이 없으면 얼굴을 들이대고는 씩~하고 웃어주기도 했다. 억지로 쥐어짜듯이 웃음을 만들었다. 안쓰럽고 처절한 웃겨주기 운동이었다.
하지만 개그맨도 아닌데 날마다 다른사람을 웃기기란 쉽지 않았다. 개그프로를 보며 웃는 것도 그 순간뿐이었다. 웃고는 싶지만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웃을 수 가 있을 까? 웃고 싶을 때 혼자서도 웃을 수 있는 방법이없을까?’
명자 씨는 웃음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다가 한국웃음연구소의 송년 웃음콘서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의별 콘서트도 다 있네.’
처음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한번 참석해 보기로 했다. 아직 혼자서 외출하기는 무리였지만 웃고 싶다는 소망하나로 웃음콘서트가 열리는 대학교를 찾아갔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면서 웃는 그런 시간일 꺼라고 생각했던 명자씨의 예상은 웃음콘서트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완전히 뒤집어졌다. 명자씨는 웃음콘서트를 통해 왜 웃어야 하는지, 웃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웃어야하는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웃음운동법을 따라하며 실컷 웃었다. 웃음콘서트에 온 사람들 모두가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오fot동안 잘 알고 지냈던 친구처럼 함께 온몸으로 웃으면서 행복해했다. 단 두세시간 동안이었지만 명지씨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웃었던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웃었다
밤늦은 시간,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을 명자씨는 느꼈다. 집에서는 가만히 누워서 쉬고 있어도 여기저기 쑤시고 욱신거리고 아팠는데, 실컷 웃고나니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고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온몸에 행복감이 찌릿찌릿 느껴졌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래 이거야! 웃어야 살 수 있어! 이렇게 웃으면 암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아.’그때부터 그녀는 웃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웃겨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웃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배운 것을 즉시 집에서 실천했다.
한국웃음연구소에서 제작한 스마일버튼을 현관 앞에 한 줄로 붙여서 ‘스마일라인’ 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마일라인을 건널 때마다 의식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꾸 깜빡했다. 하진만 의식적으로 계속 웃는 연습을 했다. 그랬더니 웃음이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스마일 라인을 지나서 신발을 신을 때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거실 한구석에도 노란 딱지를 붙였다. 식구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을 ‘ 스마일 존’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노란딱지가 붙어있는 ‘스마일존’을 지날 때마다 그곳에 들어가 15초 이상 웃기로 남편과 아들과 약속을 했다. 처음에 남편과 아들은 몹시 쑥쓰러워하면서 그곳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때마다 명자씨가 나서서 시범을 보였다. 그러고선  같이 해보자고 남편과 아들을 설득했다. 남편과 아들은 처음에는 숙제하는 기분으로, 아픈 그녀의 부탁에 마지못해 동참하였다.
그랬던 아들이 지금은 학교에서도 잘 웃고 유머도 잘해서 인기가 좋다고 자랑을 한단다. 예전보다 얼굴이 더 편안해진 남편은 직장에서 더 활기차게 일하면서 인정받고 있다. 엄마를 위해 시작한 웃음이 아들의 성격과 학교생활까지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아내를 위해서 시작한 웃음이 남편의 직장생활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웃을 일이 없어도 운동하듯이 웃고 나자 비관적이고 우울한 마음이 사라졌다.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웃음 많은 가족이 되었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명자씨는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웃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의식적으로 미소를 짓거나 소리없이 웃기로 말이다. 그녀는 운전을 할 때도 ‘ 나 홀로 웃음클럽’ 이라고 이름을 붙여 웃음에너지를 충전하고 출발한다. 일단 차를 타면 그녀는 웃기 시작한다.

“ 오늘도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 하하하하! ”
한국웃음연구소에서 배운대로 “ 호호 하하하~ 호호 하하하~ 예~ ” 리듬감 있게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 올리면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웃다보면 어느새 도착 지점이다. 혼자가 아니라 마음맞는 여러사람과 수다 떨다 온 기분을 느낀단다. 더 이상 운전이 피곤하지 않다.

택시를 탈 때면 택시기사와 둘이 ‘둘이 웃음 클럽’을 한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 인상이 별로였다. 명자씨는 택시기사에게 질문을 했다.
“아저씨 많이 웃고 사세요?”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요? 차도 막히고 돈벌이도 잘 안되고.”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넋두리를 하셨다. 명자씨는 밝게 대답했다.
“아저씨, 웃음이 좋은 건 아시죠?웃으면 복이 굴러 온다잖아요. 제가 웃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거든요. 그런데 웃음도 그게 길게 온몸으로 웃어야 좋아요........”

명자씨의 말에 택시기사아저씨의 마음이 확 열렸다. 명자씨가 크게 길게 온몸으로 웃는 시범을 보였더니 ‘웃을 일이 없는데 그렇게 웃음이 나와요? ’ 하며 아저씨도 따라 웃었다.

신호대기에 걸려 기다릴 때마다 웃기로 약속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명자씨가 택시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여는데 기사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손님, 정말 얼마 만에 웃어보는 건지 모르겠네요. 손님 덕분에 웃고나니 기분이 참 좋네요. 오늘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으니, 요금은 공짭니다.”
명자씨는 그날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
“소장님, 웃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네요! 웃는 법을 가르쳐 주신 소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하하하하~ ”

어느 날 암환자를 위한 웃음치료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김명자씨를 소개했다.   그녀라면 많은 암환우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 같았다. 현재 명자씨는 유방암예방홍보대사로도 건강의 소중함과 웃음의 중요성을 마음을 다해 알리고 있다. 암환자가 먼저 웃으니 건강한 사람도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다. 양쪽 가슴을 다 잘라낼 정도로  심한 유방암 환자인 그녀가 밝게 웃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희망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명자씨는 세계여성의 날에는 대학교 총여학생회의 초청을 받아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녀는 그동안 집에서, 차안에서 운동하듯 꾸준히 연습한 좋은 웃음소리를 가지고 강단에 섰다. 직접 암을 겪고 그것을 웃음으로 극복한 한 아줌마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고 , 그녀 또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어 무척 기뻤다고 한다.

암진단을 받고 다섯 번의 봄이 지나갔다. 암이라는 질병은  그녀의 양쪽 가슴을 가져갔지만 그녀는 그보다 더 큰 웃음과 감사와 행복을 되찾았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창가로 쏟아지는 아침got살이 이토록 찬란한지, 하루하루가 이렇게 소중하고 고마운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작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들이 밥을 떠먹여 주리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남편의 어깨가 그렇게 넓고  큰 힘을 가졌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 까.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감사함을 알게 된 그녀는 2007년 새로운 도전을 했다.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에 진학을 한 것이다. 웃음세미나에서 새롭게 지은 그녀의 닉네임 “하늘꿈”으로, 건강한 사람보다 몇 배 활기차게 살고 있는 명자씨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되찾아주는 웃음전도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명자씨는 웃음운동으로 제2의 삶을 당당하게 열었고 그 웃음을 자신처럼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쁘게 나누고 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명자씨의 밝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소장님, 저 오늘 병원에 정기검진 갔다왔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암 수술한지 5년 지났으니 이제는 1년에 한번씩만 정기검진하면 된대요! 하하하하~”

암은 대개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본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그녀에게 암세포도 감히 다시 자리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 의사는 완치라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 김명자씨는 많은 암환우들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회,대학교,여성리더십아카데미,평생교육원,공공기관,기업체 등 웃음이 필요한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웃음강의를 하며 당당한 웃음치료전문가로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웃음과 함께 희망을 나눠주며, 건강한 사람들에겐 도전과 FUN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아줌마다. 본인이 행복하기 때문에 웃음이 나오고, 그 웃음이 전파되어 사람들도 잃어버렸던 행복을 되찾는다. 자신을 통해 다른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때면 감동의 물결이 소리없이 다가온다고 명자씨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