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대한민국 모든 선영이의 마음을 설래게했던 광고카피, "선영아 사랑해!"기억하시나요?
여성포털 마이클럽의 초기 맴버로 잘 나가던 시스템엔지니어(프로그래머)였던 강정희님은 다음.네이버.인터파크등 최고의 아이티기업 스카웃도 거절하고 2003년 과감히 사직서를 냈게 됩니다. 당시 프로그래머는 판.검사.의사보다 신랑감 순위가 높을 정도로 인기직종이였기 때문에 20대 젊은 청년에겐 쉬운 결정이 아니였던 것이죠.
아버지에게 낚이다!
한국의 빌게이츠, 제 2의 안철수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매일 야근을 마다하며 일하고 자기개발에 놀 시간마저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작은 수공업 기업의 대표셨고 독자인 제가 가업을 잊길 바라셨죠. 하지만 젊고 꿈이 있던 때라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기보단 저의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훨씬 강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생활하면 국산차타고 사업하면 외제차 탄다" 며 살살 낚시질을 하시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틀린말은 아닌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직장생활만 하겠다는 계획은 아니였기 때문에 아버지 바램대로 가업을 물려받는 것 보다 저의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2003년 저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라면 내 꿈을 더욱 펼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월급만으로 살기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혼자일때는 월급의 절반은 공부하며 자기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는데 결혼 후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해 지더군요. 그 때가 되니 아버지의 낚시질이 말로 들리기 시작하고 마음이 움직이니 온갖 구실을 다 붙이기 시작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본의 경우 가업을 이어가는 전통적인 기업이 수도없이 있고 회사에선 아무리 일해도 남에일하는 거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면서도 비젼만 바라보기도 망막하더군요. 그래서 일한만큼 벌 수 있다는 매력에 살짝 기대어 못이기는 척 아버지 말에 따르기로 했죠. 그게 화근이였습니다.^^;;
마이너스 가업을 물려받다.
아버지 뜻에 따라 첫 출근을 하고 회사 재정을 살펴보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가네수공업형태의 개인사업장은 운영이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마이너스 상태였습니다. 물건부터 보내주는 외상매출로 월 2000만원 정도 여신이 매달 발생하고 인건비와 운영비는 마이너스 통장에서 1000원정도 쓰고 있었습니다. 매 달 3000만원씩 적자였던 기업에 제가 들어온 것이였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이미 사표를 쓴 저는 아내얼굴이 떠오르고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하나.. 한숨만 나왔습니다.
젊은 피를 수혈하다.
30년간 이어온 아버지의 거래방식, 제 눈엔 말그대로 구시대적인 사업방식으로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상의해 보기도 했지만 고수하려는 아버지의 핀잔만 들을 뿐이였죠. 마찬가지로 거래처들역시 외상거래에 익숙하고 유리하다보니 변화를 기대할 수 없고 어찌할 방법이 없더군요.
결국 수금이 관건이였습니다. 아버지의 거래처는 제가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판을 짜기로 했죠.
내부관리부터 바꿔야 한다.
저의 전공을 살려 수기로 작성하던 장부를 폐기하고 내부관리 프로그램(erp)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회사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기본 시스템을 만들고 하나씩 추가하며 6개월에 걸쳐 우리회사 맞춤형 관리시스템을 완성하였습니다.
기존 장부기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고와 수입.지출을 한눈에 볼 수 있게되었고 그제서야 30년만에 작은 기업의 재무재표가 구축되었죠. 지금까지 생산하던 보급형 줄넘기로는 경쟁력이 약하다 생각해 눈에 잘 띄고 재미있는 2색줄넘기를 도안해 시장에 출시했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희소식이 전달되더군요.
대박이다!
토요일 오전, 거래처에서 제작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100여개 생산하고 있던 2색줄넘기를 500개.. 1000개..3000개까지 들어옵니다. 뭔일이지?
전국민 공감 프로젝트 건강하게 삽시다 편에서 2색 줄넘기를 들고 스타들이 줄넘기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ㅎㅎ 그리고 "줄넘기 합시다!" 가 방송되기 시작한 것이였죠. 하루 주문량이 3000개, 일손이 부족해 저의 가족들과 부업, 그래도 부족해 거래처 직원들까지 줄넘기를 꽤면서 하루하루 물량맞추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일 매출 1800만원(소비자가).. 30년 줄넘기 역사에도 없었던 일이 발생하고 주말도 없이 1년여를 일했죠.^^ 가네수공업에서 기업으로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매출은 2색 줄넘기 하나로 64억이 넘었으니 그야말로 대박이였죠^^
사업에 투자하다.
열풍은 식기 마련입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대중의 관심도 정리가 되더군요. 새로이 후프사업에 투자하며 사업확장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전 직장이였던 마이클럽에서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었고 6단계 단계별 다이어트 후프를 개발해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기존 후프시장은 저가형으로 초등생 학습용과 성인용으로만 구분되어 있었지만 후프의 매니아층을 공략하는 맞춤개발로 시장진출에 성공하며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국내 후프시장에서 2위로 올라서며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현재 매출은 줄넘기.후프로만 평균 30억으로 안정된 구조에 있고 스포츠용품 직수입을 통해 생산자며 공급자로서 수입모델을 넓히고 생산자로서 세계 1위 제품을 만들기위해 야간에도 배드멘턴을 칠 수 있도록 LED 셔틀콕과 이의 개선품인 야광셔틀콕까지 개발하여 생활스포츠용품에 중점을 두고 신제품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생산자는 망하지 않는다.
아버지역시 힘들게 생산자로서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어찌보면 이미 망했어야 하는 사업임에도 망하지 않으셨죠.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티업계를 떠난 것은 제 인생을 다시사는 선택이였습니다. 지금까지 업계에 남아 있었다면 전 아마도 월급에 가는 목숨을 붙이며 힘든 가장으로 남아 있었겠죠. 아무리 작은 기업이지만 생산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시장에 따라 생산품의 변화는 있을 지 모르지만 생산자는 제품을 잘 만들면 되니깐요. 그것이 대를 이어 줄넘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느낀 점 입니다. 어렸을 땐 작아보이던 일이 결혼후엔 위대한 일로 보이는 것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줄넘기. 후프등 스포츠용품 유통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생산품에 나이키.아디다스등 브랜드를 붙여 고가에 판매하는 것 보다 품질좋은 국산 생산품을 좀더 눈여겨 보고 관심을 갖으면 관리가 가능한 대량유통이 가능해 집니다. 유통구조역시 생산자들과 직거래로 단순해 지기 때문에 보다 높은 수익이 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상품처럼 재고부담을 않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작을 편하게 할 수 있죠. 브랜드 보다 국산생산품을 유통하시는 것이 수익도 높고 시작도 편하게 할 수 있답니다.
여담 Tip~*
이 : 대박이구나~ ㅎㅎ
강 : 니가 더 대박이지~ ㅎㅎ
이 : 뭐니뭐니해도 우리 친구들 중에 강사장이 제일 오래갈꺼야.
강 : 그래도 생산이란 업은 몸이 힘들잔아. 지금은 젊으니까 괜찮지만.. 나이들면 다른 일 해 보고 싶어^^
이 : 이정도 규모면 이미 자리 잡지 않았겠어?^^ ㅎㅎㅎ
강 : ㅎㅎㅎㅎ ......
이 : 스포츠용품 유통하는 분들하고 직접 거래하면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커지겠는데?
강 : 그렇게~ 근데 기존 거래처도 생각해야하고 새로운 거래처도 생각해야 되서 요즘 고민하고 있어. 유통망을 넓힐까 하고..
이 : 유통하시는 분들 중에 직거래 연락오면 소개해 줄께^^ 아마 관심 있는 분들 많을꺼야~ ^^ 글고 울 짠돌이카페 회원분들중에 후프관심 많을 것 같다. 여성분들이 많이 계셔서 ~ 생각좀 해봐바
강 : 뭐 얼마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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