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기도

감동의 글 10가지

金成官 황금웃음 2011. 6. 7. 10:24

 

1. 점원의 친절에 대한 카네기의 보답 

 

 

비오는 날 어느 가구점 밖에서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가구 구경을 하시면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가구점 점원은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서 계신 것을 보고

얼른 밖으로 나가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할머니 다리도 불편하신 것 같은데 밖에서 비를 맞고 계시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셔서 비도 피하실 겸 구경을 하세요.“

 

 

그러나 할머니는

“나는 가구를 사러온 사람이 아니고

누구를 기다리면서 그저 구경만 하는 거라오.”

 

 

하지만 가구점 점원은 “구경만 하셔도 괜찮다”고 하면서

할머니를 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기의 자리에 앉아 비를 피하면서 기다리게 해 드렸다.

 

그런지 며칠 후

그 가구점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 편지는 강철 왕 카네기의 친필이었다.

 

“일전에 비 오던 날

나의 어머니께 귀 상점에서 베풀어주신 호의와 친절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어머니의 요청이 계셔서

지금 짓고 있는 저택과 플랜트회사에서 쓸

가구 일체를 당신의 상점으로부터 구입코저 하오니

거절 마시고 견적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D 카네기 드림”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하면서?”

 

 

기회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크고 작은 노력과 열심이 훗날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

 

-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2. 외아들이 보낸 수표.

 

 

꽃다운 나이에 혼자되어 아들을 생명이상으로 여기며

외아들을 키워온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아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홀어머니를 혼자 놔두고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그의 능력이 미국에서도 인정이 되어

그 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와 같이 미국에서 살기를 권유를 했으나

어머니는 거절하고 혼자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아들은 고향에서 혼자 게신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매달 정성을 담아 편지와 함께 수표를 송금하는 것으로 효성을 대신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굶주리면서 동네의 험한 일을 도맡아 하셨다.

고향 사람들은 자식을 불효자식이라고 험담을 하고 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을 보지도 못한 채

쓸쓸이 혼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에게 연락이 되었고 아들이 도착하기 전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위해 그 집으로 가서 방에 들어가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서로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고통은 자기들의 무관심 때문이었기 때문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면서

가진 고생을 다한 할머니의 벽에는

온통 아들이 보내준 미국 수표로 도배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보내드린 수표가 단순한 편지인줄 알고

아들을 보는 듯 벽에다 다 붙여놓고

오며 가며 들여다보며 아들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모르면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가치 있는 것을 무심코 지나친 것은 없을까?

 

 

                                                         - 유 재필 목사 예화 중에서-

 

 

 

               3. 안델센을 키운 격려 한 마디

 

 

 

 

 

 

 

 

 

유명한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어린 시절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정작 글을 잘 쓰지는 못했다.

 

 

 

 

 

열한 살 때, 안데르센은 나름대로 힘들여 쓴 작문을 들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무안함과 실망에 빠진 안데르센은 집에 돌아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들을 본 안데르센의 어머니가 

 

 

 

그의 작은 손을 잡더니 화단에 데리고 갔다.

 

 

 

 

 

 

"한스야, 여기 이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구나.

 

 

 

하지만 이 꽃 옆엔 싹이 난 지 얼마 안 된

 

 

 

아주 작고 어린 잎사귀도 있잖니. 

 

 

 

 

 

이 잎사귀는 자라려면 아직 멀었다. 

 

 

 

이 잎사귀는 자라서 꼬-옥 예쁜 꽃을 피울게다. 

 

 

 

넌 아직 이 어린 잎사귀와 똑같다.

 

 

.

그러니 언젠가는 환하고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훌쩍이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뒤로도 안데르센의 글 솜씨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칭찬받지 못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절망에 빠져 울고 싶을 때마다 

 

 

 

엄마가 하신 그 말을 기억하고 동화 쓰기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위대한 동화작가가 되었다.

 

 

 

 

 

           4.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의 말씀


 

                                          김 태 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1802년 10월 강진. 서울에서 훌륭한 분이 귀양을 와서 동문 밖 주막에 계시는데,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전의 아이이며 열다섯 살이었던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글을 배우러 간 지 며칠이 지나 선생님이 말했다.


“문사(文史: 문장과 사서)를 공부해보도록 하여라.”


선생님이 공부를 권유하자, 아이는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내심 매우 기뻤지만 부끄러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머리가 둔하고[鈍], 꽉 막혔고[滯], 아주 거칠답니다[?].

 제가 어찌 그런 공부를 하겠습니까? …”

선생님은 '배우는 자의 병통'을 얘기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 세 가지가 있지.

첫째, 기억이 빠른 점이다. 척척 외우는 사람은 아무래도 공부를 건성건성 하는 폐단이 있단다.

둘째, 글짓기가 날랜 점이다. 날래게 글을 지으면 아무래도 글이 가벼워지는 폐단이 있단다.

셋째, 이해가 빠른 점이다. 이해가 빨라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쏙쏙 받아들이면 아무래도

앎이 거칠게 되는 폐단이 있단다. 넌 그것이 없지 않느냐?”


선생님은 말을 계속 이었다.


“네가 스스로 둔하다고 하는데, 둔한데도 열심히 천착(穿鑿)하면 어떻게 될까?

계속 열심히 뚫어 구멍을 내면 큰 구멍이 뻥 뚫리고, 꽉 막혔던 것이 한번 뚫리게 되면

그 흐름이 왕성해지고, 거친데도 꾸준히 연마하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된단다.”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되고,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미묘한 이치를 들으면서,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그렇다면 부지런히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하느니라.”


이 아이는 이런 선생님의 가르침에 불끈 힘이 났다. 그 후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겼다.

늙어 일흔다섯 살이 되어서도 이 장면이 너무 뚜렷하여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선생님은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고, 그 아이는 제자였던 황상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해본다.

 

첫째, 칭찬의 힘이다.

능력개발에 중요한 것은 현재 드러난 재능보다도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선생님의 격려는 재능을 함양하고 발휘하는 평생의 힘이 되었다.

 

둘째, 맞춤형 교육이다.

다산이 황상에게 과거공부를 권하지 않은 것은 아마 황상의 신분상 불리함을 고려한 탓일 것이다. 

무엇보다 황상에게 문장의 재질이 있음을 다산은 발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상은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여, 당대의 추사 김정희가 높이 평가할 정도가 되었다.

최근 경기문화재단(대표: 권영빈)의 지원으로 ‘교사 실학기행 2009’를 다녀오는 길에, 참가한 교사 분들이

 다산과 얽힌 교육관련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황상의 이야기는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 감동적인 얘기를 내가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어 많이 말하지 않았다.

이에 관한 얘기와 원문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정민 한양대 교수가 이미 다산연구소 웹사이트에

소상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지 바로가기 ☞박석무의 임술(壬戌) 3근계(三勤戒), 정민의 성의병심법(誠意秉心法)).

그렇지만 새 학기를 맞아 또 상기해보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겠다 싶어 다시 옮겨 보았다.

 

 

 

 

           5. '쉬면 늙는다 (If I rest, I rust)'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영국인 토마스 파(Thomas Parr_1438~1589)로 알려지고  
 
있다. 152세까지 장수했던 그는, 
155㎝의 키에 몸무게 53㎏의 단구였다고 한다. 
80세에 처음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고 
122세에 재혼까지 했다. 
그의 장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자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찰스 1세가 그를 왕궁으로 초대하여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그때의 과식이 원인이 되어 2개월후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왕궁에서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 루벤스에게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는데, 
이 그림이 바로 유명한 위스키 'Old Parr'의 브랜드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의 모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가하는 논의는 예로부터 있어  
 
왔다. 성경에는 수명이 120세로 나온다(창세기 6장 3절). 
현대 의학자들도 비슷하게, 
125세까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통계청에서도 현재 65세를 넘은 사람의 평균 수명이 
91세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인생 칠십은 옛말이고 
인생 백세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또 '인생 백년 사계절 설(說)'을 이야기하는 사람 
 
들이 많다.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 까지가 '겨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70세 노인은,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만추(晩秋)쯤 되는 것이오, 
80세 노인은 이제 막 초겨울에 접어든 셈이 되는 것이다. 
동양에서와 같은 回甲개념이 없는 서양에서는 
대체로 노인의 기준을 75세로 보는 것 같다. 
그들은 65세에서 75세까지를 'young old' 
또는 active retirement(활동적 은퇴기)'라고 부른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아직도 사회 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연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연령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젊음일 것이다. 
유대계 미국 시인인 사무엘 울만은 
일찍이 그의 유명한 시 '청춘 (Youth)' 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 it is a state of Mind)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재작년 96세로 타계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타계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다. 
페루의 민속사를 읽고 있으면서, 
아직도 공부하시냐고 묻는 젊은이들에게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 는 유명한 말을 했다. 
1973년에 96세로 타계한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93세때 UN에서 조국 카탈루냐의 민요인 '새의 노래' 를  
 
연주하고 평화에 대한 연설을 하여 세계인들을 감격케 했다. 
이들보다 나이는 적지만 금년도 70세인 
세계 제일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최근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쉬면 늙는다 (If I rest, I rust)' 라며 바쁜 마음 
(busy mind)이야말로 건강한 마음 (healthy mind)이라며 
젊음을 과시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젊은이보다 
더 젊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마음이 청춘이면 몸도 청춘이 된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소극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노령에도 뇌세포는 증식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 
확실히 '늙음'은 나이보다도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생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감사한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 
항상 젊은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이 
젊음과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 [글 : 문병대] 
 
 
 

         6. 시(詩) 한 수(首)로 목숨을 건진 임제(林悌)

 

임제(林悌-1549~1587): 호는 백호(白湖).朝鮮(宣祖9)에 알성문과(謁聖  

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동서 양당의 싸움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 다니며 여생을 마쳤다.                                                 

 

그는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詩에도 능했고, 절세의 美男으로

천하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였다.                                    

 

 

28세 때 춘삼월 어느날 한양에서 술에 만취하여 수원 어느 주막까지 가서는

그 집 주모와 눈이 맞아 하룻밤을 동침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주모의 남편에게 발각되어그 남편이 칼을 들고 들어와 죽이려고

하자 이왕 죽을 바에야 詩나 한 수 짓고 죽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자 남편이

허락하므로 즉석에서 詩를 지었다.                                                       

 

작야장안취주래(昨夜長安醉酒來):어제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오니.

도화일지란만개(桃花一枝爛漫開):복승아꽃 한 가지가 아름답게 피었네. 

군하종수번화지(君何種樹繁華地):그대 어찌 이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나.

종자비야절자비(種者非也折者非):심은者가 그른가 꺾은 者가 그른가.  

백호는 詩를 다적은 후에 이제 죽이라고, 목을 내밀었다.                       

 

그 남편은 이 詩를 보고 요염한 복숭아꽃의 유혹, 그리고 꽃(마누라)을 쉽게

꺾을 수 있는 곳, 뭇 남자와 격의 없이접촉할 수 있는 술집에 둔 자신의 잘못

도 있음을 꼬집은 글귀에 감복하였다.                                                  

 

그는 임제의 호탕한 선품과 축중한 인품에 매료되어 술상을 들여와서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도 있음을 인정 백호의 罪를 용서했다.   

 

지혜란 무엇을 구할 것인가, 무엇을 피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이며,              

  지혜로운 생각은 순박한 생각보다 더 환영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이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행동과 지혜가 갖추어지면 새의 두 날개처럼        

나에게 이롭고 남도 돕게 된다.   [漢詩모음 中에서]                                 

                        

7. 넬슨 만델라의 감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넬슨 만델라 전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세계 정상중 감옥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입니다.
무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만델라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후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대통령에도 당선 되었습니다.
감옥 밑바닥에서 감사가 일궈 낸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위기 상황에서도 건강을 지켜 낼 뿐 아니라.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고
마침내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8. 일본 유족들의 모습

과연 선진국민이다 -

 

 

 

 

참사 발생 4일 만에 공개된 부산 중구

신창동 실탄사격장 화재 현장에 들어선

일본인 피해자 가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삼키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조용히 혈육의 유품을 확인하는 그들의
손길은 떨렸지만 목 놓아 울지 않았고 소리치며

한국 당국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40분가량 진행된 현장 공개를 마친 이들은

조용한 걸음으로 처참한 현장을

빠져나와 소리 없이 버스에 올랐다.
이번 사고로 숨진 이나다 아츠노부(37)씨의 부인은

"도와주신 일본과 한국! 정부,부산시에 감사한다"며

오히려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이들을 인솔한 일본영사관 직원들은

몰려든 취재진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숨진 가족의 흔적을 찾는 이들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영사관 관계자는

"유가족들은 자세히 유품을 확인했고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고 전했다.

함께 현장을 찾았던 부산시 관계자는

 "가족을 ! 삼킨 이국에 원망과 격한 감정을

품었을 만한데도 눈물만 뚝뚝 흘리며

평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면서 "

슬픔을 참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을

더 숙연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유가족들과 사고 수습을 위해 매일

대! 면했던 대책본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고함 한번 들린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사고 원인을 꼭 밝혀 달라는 이들의 요구엔

항상 예의가 동반됐다.

이들의 목소리는 낮기만 했다.

대책본부 측이 보상 문제를 꺼내면

이들은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먼저 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유족들은 처음엔

_! 湺G_ 표정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원인 규명에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경찰에 적극 협조했다.!

한 경찰관은 "냉정하다 할 정도로 침착한

그들이 몰래 한쪽 구석에서 혼자

눈물 흘리는 걸 보면 정말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가족의 유해와 함께

김해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의

전세기편으로 귀국했다.

 

이들의 4박5일 한국 체류는 절제와
질서가 있는 슬픔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9.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일까?

60세 - 좋은 일이 있어도 건강이 걱정되는 나이.     

62세 - 삼사십 대 여자가 무서워 보이는 나이.        

64세 - 무리하면 쓰러지는 나이.                          

65세 - 긴 편지는 두 번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67세 - 동갑 내기 할아버지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나이.

      
69세 - 상 받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나이.  

70세 - 길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무례가 되지 않은   

                 나이 이며,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러도 괜찮은 나이.

    72세 - 서서히 하늘과 가까워지는 나이.                     

 73세 -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75세 - 이름 석자 다음에 늙은이 [翁]자를 붙이는 나이이며 ,

       살아온 이야기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79세 -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마지막인가’를            

       생각하는 나이.

80세 -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도 괜찮은 나이.          

81세 - 이 자식이 뉘집 자식인지 잘 모르는 나이      

     82세 - 뭘 하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괴로워 하는 나이.

      
84세 - 미물도 사랑스런 나이.                           

  86세 -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87세 - 귀신을 봐도 놀라지 않는 나이.                

  88세 - 뛴다고 생각하는 데 걷고 있는 나이.             

  89세 -  90세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나이               

90세 - 주민등록 번호를 잊어 버리는 나이.           

92세 - 게임의 룰을 지킬 수 없는 나이.                

93세 - 한국말도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나이.

  94세 - 사람이 왜 ‘무형 문화재’인지를 보여주는 나이.
              

      
95세 - 무엇을 하던  주위에서 신기하게 보는 나이. 

96세 - 간지러운 코도 다른 사람이 긁어 주는 나이.

97세 - 노인 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         

            98세 -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 구별이 안 가는나이.   


99세 -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있는 나이.           
 
100세- 인생의 과제를 다하고 그냥 노는 나이.          


10. 아버지를 져다 버리는 지게        

옛날 어느 고을에 총명하고 마음씨 착한 봉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봉이의 부모님은 몹시 게으른 농사꾼이었습니다.
가진것도 넉넉지 못한데다 모든 일에 게으르고 보니,
집안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소년의 어머니는 마음씨가 곱지 않아서
몸져 누운 시아버지를 여간 구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그렇더라도 아들이 효성스러우면 좋으련만,
이 게을러 빠진 농부는 뭐든지 자기 부인의 말을
따르는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봉이 소년은 그런 부모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리고, 앓아 누운 할아버지가 불쌍하여
늘 할아버지 곁에서 알뜰살뜰 보살펴 드렸습니다.
저녁 때가 되면 봉이는 자진해서 할아버지 방의 군불을 땠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방이 더울 만큼 때지 않고 시늉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녀석아, 웬 나무를 그렇게 처때는 거냐?”

군불 때는 봉이에게 어머니가 소리 치면, 봉이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이 나무는 제가 지난 가을에 할아버지
군불감으로 따로 해다가 말린 거예요.”
그 뿐만 아니라, 소년은 늘 군불 속에
감자나 고구마를 구웠다가 몰래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밤에 소년이 군 감자나 고구마를 가지고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면,
저녁을 변변치 않게 먹은 할아버지는 여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소년의 할아버지는 너무 늙은 데다 몸까지 건강치 못한지라,
먹을 것을 보면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할아버지 방에서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말동무를 해드리던 봉이는, 할아버지가 잠이 드신 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때마침 안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지내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봉이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말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병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느냐 말예요.”
봉이 어머니는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니, 낸들 어쩌겠소. 돈이 있어야 아버님 병을 고쳐드리지”
“누가 병을 고쳐드리자고 이러는 줄 아세요?
왜 여태 안 돌아가시냐는 거예요”
“아, 사람의 목숨을 누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참아야지”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병든 어른 모시는게
쉬운 일인 줄 아세요?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죽겠어요”

“너무 신경쓰지 마시오. 그리고, 아버님 시중은
봉이 녀석에게 맡기면 되지 않소.”
“나는 그게 더 속이 상해요. 봉이는 우리 아들인데,
그 녀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 어미 아비보다는 할아버지한테
더 지성이니 말예요. 이제 우리도 아들의 효도를 받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봉이를 아버님 시중이나 들게 해야 하지요?

나는 더 이상 그 꼴은 못 보겠어요”
“그렇지만 어쩌겠소. 아무튼 돌아가실 때까지는 모셔야 되지 않겠소”
봉이는 어미와 아버지가 나누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더욱 할아버지가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은밀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여보, 내게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
당신 내일 아버님을 지게에 지고 산에다 버리고 오세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모시기가 귀찮다해도 어찌 그런 생각을...”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예요. 당신 고려장이란 말도 못 들어봤어요?
늙은 노인을 산에다 버리는 것은 예부터 있어 온 풍습이라고요.”

“하긴 그렇구려. 하지만, 아버님께 뭐라고 해야 하지?”
“아버님은 먹을 것을 드린다면 어디라도 따라가실 거예요.
정신이 없는 노인이니까요”“그, 그렇긴 하지만...”
“여보, 꼭 그렇게 하세요. 난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아요.”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밖에서 듣고 있던 봉이는
너무나 놀랍고 슬펐습니다.그날 밤 봉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를
산에다 버리고 올 것이 뻔했습니다.
봉이는 할아버지가 가엾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기르실 때는 얼마나 귀여워하셨을까,
얼마나 소중한 자식으로 생각하셨을까를 생각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워졌습니다.
그러다가 봉이는 문득 한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옳지, 그 방법을 써야겠군.”

봉이는 혼자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봉이의 어머니는 그래도 양심이
조금 남아 있었던지 할아버지의 진지상을 다른 날보다 잘 차렸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웬일로 생선 도막이 다 상에 올랐구나!”
할아버지는 밥상 곁에 앉아서 가시를 발라드리는 봉이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부터는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더욱 잘 모시려나 봐요”
“흐음, 그래야지. 이제 철들이 드는 모양이야.”

아침 식사가 끝나자 봉이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새 옷을 입으니까 기분이 좋구나. 봉아, 네 말대로 이제부터
아비 에미가 나를 잘 돌보려나보다. 고마운 일이지, 고마운 일이야.”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했습니다.
“아버님, 제가 모처럼 산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실과를 따드릴 테니 지게에 앉으시지요.”

마침내 아버지가 지게를 가져와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기뻐하며 지게 위에 앉았습니다.
“아버지, 저도 같이 가겠어요.”
봉이는 놓칠세라 따라나섰습니다.
“넌 집에 있거라”
“봉아, 내가 찰떡을 만들어 줄테니 너는 집에 있거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렸지만 봉이는 한사코 할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우겼습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듯 봉이를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산으로 가는 도중, 할아버지는 지게 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봉이 아버지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봉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할아버지는 너무 오래 사셨어.
네 어머니와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모시기가 힘이 드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할아버지를 산 속에다 버리라 가는 길이다. 알겠니?”
“예, 알겠어요. 정 모시기 힘드시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봉이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정들었던 봉이인지라,
그런 말을 들으면 몹시 놀라고 가슴 아파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봉이의 태도는 침착했던 것이지요.
“네가 부모를 이해해 주는 것을 보니 참으로 다 컸구나!”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드디어, 산 속 깊은 곳에서 아늑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저 바위 아래가 좋겠군.”
아버지는 중얼거리며 그곳에다 지게를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지게 위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든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재빨리 그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아버지, 저 지게는 가져가야지요”
“아니다. 지게에서 내려놓으면 할아버지가 깨실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냥 내려가는 게 좋겠다”아버지는 봉이의 팔을 끌었습니다.
“안 돼요, 아버지. 저 지게를 꼭 가져가야 해요”
봉이는 고집스럽게 버텼습니다.

“아니, 왜 꼭 지게를 가져가겠다는 거냐?”
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당연하잖아요?
이 다음에 아버지 어머니가 늙고 병들면 저도 산에다 버릴 때 이 지게를 쓰겠어요”
봉이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나도 언젠가는 늙고 병드는 날이 있겠지.
그러면, 우리 봉이 녀석이 나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아버님, 이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지금까지 아버님을 잘 모시지도 못하고, 더구나 이 산속에다
아버님을 버리려 했으니 저는 참으로 몹쓸 자식이었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정말 잘 모시겠습니다”

아버지는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씨 곱고 지혜로운 봉이 덕분에 자신의 불효를 깨닫게 된
아버지는 그 뒤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봉이가 한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도 역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으로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봉이의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서
어찌 자식이 나에게 효도하기를 바라겠는가’
라고 했던 옛 사람의 가르침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언 강가에서 사랑하는 딸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행복한 시간을 보배고 있던 젊은 아빠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얼음이 깨지면서 딸이 차가운 강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 났습니다.

순간, 아빠는 차가운 강물 속에 뛰어 들어 딸을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탈진 끝에 아빠는 강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빠는 내가 뛰어들면, 내가 죽을 지,살지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계산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공호흡이 처음 생겨난 건 과학자에 의해서도, 의사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한 어머니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냈는데 숨을 쉬지 않고 축쳐져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살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아이의 입에 계속해서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물을 토하며 의식을 찾았다는 이야깁니다.

 

인공호흡은 과학이 아닌, 사랑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계산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바쁜 가운데, 제4기 이화여대 최고명강사워크샵을 실시합니다.

한 달 전부터 공지를 해 드렸지만......

바로 금주 말에 대전 유성에 위치하고 있는 계룡스파텔에서 개최합니다.

6월 3일(금)과 4일(토), 1박2일을 거쳐서

선후배의 사랑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서 참가하여 응원해 주시겠다는 선배들이 계셔서

이번 최고명강사워크숍이 사랑이 충만한 워크숍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박효선교수(3기)님의 도움으로 모시기 힘든 훌륭한 분을

6월 3일 저녁 특별 강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계산하지 마시고 참석하셔서 사랑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축복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으 앞날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