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깊은 성찰, 따뜻한 시선의 작가 신경숙이 절정의 기량으로 풀어낸 엄마 이야기,
엄마를 통해서 생각하는 가족 이야기, 가장 큰 사랑 이야기.
세상 모든 사람은 엄마의 자식, 우리 모두에겐 나만의 엄마가 있다. 때로 좋기도 밉기도 고맙기도 원망스럽기도 한, 그러나 굳건한 땅처럼 분명하고 단단한 엄마. 어느날, 그 엄마를 잃어버린다. 나이 들고 몸도 성치 않은 엄마를. 서울 사는 자식들 편하라고 아버지 생신을 치르러 시골집에서 올라오던 길,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 손을 놓친 찰나, 엄마는 꿈처럼 사라진다. 전단지를 돌리고 인터넷 광고를 하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 온 식구가 사방을 헤매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가족들은 비로소 가장 낯익은 존재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공기처럼 물처럼 대지처럼 자신과 함께 있어준 엄마의 무게를, 엄마의 빈 자리를 통해 확인한다.
엄마의 모든 소망과 꿈을 먹고 자란 큰아들, 친구처럼 의지하며 무람없던 큰딸, 자식 기르는 기쁨을 알게 해준 작은딸, 평생 살림의 책임을 떠안기며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 들이, 엄마의 부재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아프게 쏟아낸다. 이야기 속에서 식구들은 각자 자기만의 엄마를 추억하고, 그 속에서 조금씩 낯설지만 진정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해간다. 하나의 사람으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꿈과 소망을 안고 웃고 울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생명을 낳고 힘을 다해 키워낸 사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다른 사랑을 마음으로만 품은 한 사람,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엄마는 끝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과연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했을까. 어딘가에서 엄마는 온전히 존재할까. 우리 가슴속에 잠자는 가장 깊은 사랑을 일깨우며 진짜 감동을 전해주는 귀한 소설. 오늘, 우리 엄마가 그리워진다! 이 책을 추천한 담당자 : 이지영 (jylee721@yes24.com)
1장 아무도 모른다
2장 미안하다, 형철아
3장 나, 왔네
4장 또다른 여인
에필로그_장미 묵주
해설
우리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역작
신경숙 문학의 오랜 흐름을 한곳으로 모아놓은 소설적 결정(結晶)!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으며 소설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작가,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되었다. 작년 『리진』을 펴낸 데 이어 여섯번째 장편이다. 연재 후 작가는 4장으로 구성된 연재원고를 정교하게 수정하고 100여매에 달하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날 실종됨으로써 시작하는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어머니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추리소설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엄마는 사라짐으로써 가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찾아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각 장은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딸(1장)―큰아들(2장)―아버지·남편(3장)―어머니·아내(4장)―딸(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시점의 전환은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각 장은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모놀로그를 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지닌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상은 각각 남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고 스며들어 탁월한 모자이크화로 완성된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우리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역작
신경숙 문학의 오랜 흐름을 한곳으로 모아놓은 소설적 결정(結晶)!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으며 소설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작가,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되었다. 작년 『리진』을 펴낸 데 이어 여섯번째 장편이다. 연재 후 작가는 4장으로 구성된 연재원고를 정교하게 수정하고 100여매에 달하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날 실종됨으로써 시작하는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어머니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추리소설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엄마는 사라짐으로써 가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찾아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각 장은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딸(1장)―큰아들(2장)―아버지·남편(3장)―어머니·아내(4장)―딸(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시점의 전환은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각 장은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모놀로그를 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지닌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상은 각각 남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고 스며들어 탁월한 모자이크화로 완성된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93~94면)
큰아들의 졸업증명서를 직접 들고 기차를 타고 난생처음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가 아들의 숙소인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잠들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 동사무소가 첫 직장이었다는 것도 잊은 채 바쁘게 살다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뒤에 큰아들이 떠올리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일부인 것이다. 아들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이처럼 눈물겹고 안타깝도록 자식만을 바라보는 존재이다. 그동안 앞만 바라보고 성공가도를 달려오면서 정작 가장 가깝고 소중한 어머니를 등한시했다는 때늦은 깨달음은 아들에게 통한의 눈물을 안겨준다. 딸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 (275면)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262면)
‘진뫼’라는 시골동네에서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오남매를 낳고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아온, 이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그 엄마에게도 사실은 당신만의 낭만과 애틋한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은 이 소설의 극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4장에서야 밝혀지는 어머니의 숨겨진 사랑이야기는 충격과 동시에 애잔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236~37면)
어머니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한 여성으로서 어머니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을까,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만 애써 외면해온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해 이 소설은 가슴 아프게 응답한다. 갈피마다 서려 있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머니의 에피쏘드들은 읽는이로 하여금 독서를 멈추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빠르게 읽히지만 중간중간 독서를 멈추고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고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세밀한 문체와 내면묘사는 신경숙 소설의 정점이라 할 만큼 뛰어나다. 어머니라는 보편적인 소재뿐만 아니라 추억을 환기하며 물흐르듯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섬세한 문체와 묘사는, 읽는이에게 소설 속 화자의 고백이 완벽하게 자신의 것과 일치하는 듯한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독자로 하여금 소설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착각하게끔 해서 작품 안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묻혀 있는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작가의 말)
소설 속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이 ‘소박한 희망’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이 소설의 사회적 의미와 파장력은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최첨단 기술문명을 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작가의 낮고 깊은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반성과 눈물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문학사에 이 소설처럼 본격적으로 어머니와 가족의 정을 체감하도록 한 작품은 아주 드문만큼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백낙청)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늘 배경으로 묻혀 사라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로서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는 작가의 간곡함은 읽어가면서 곧 우리 모두의 소망으로 바뀌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이전 텍스트를,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필사(筆寫)하며 다시 한줄 한줄 써내려간 소설이다. 어떤 작가를 두고 평생 한 작품만을 쓰고 또 고쳐쓴다고 말하는 것이 더없는 경의의 표현이 될 수 있다면, 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 문학의 오랜 흐름을 한곳으로 모아낸 빼어난 소설적 결정(結晶)이면서, 언젠가는 다시 고쳐씌어질 신경숙 소설의 운명적 표정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은 아닐 것인가.(…)
한반도 진뫼라는 산골에서 태어나 여사여사한 내력의 삶을 살아온 ‘너’의 엄마이자, 조선땅 어디에서나 만나는 우리의 엄마, 그리고 엄마라는 보편적 삶 그 자체. 어머니라는 자리.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정홍수 해설 「피에타, 그 영원한 귀환」)
이 소설이 일깨우는 것은 단지 가족간의 정이나 어머니의 희생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자기 생의 근원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소중한 것은 그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삶에 대한 직관과 긍정을 새롭게 자리잡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사라진 엄마는 지상의 모든 상처와 슬픔을 품어안는 사랑의 화신으로 귀환한다. 각 장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환영 같은 어머니의 모습 ㅡ 소눈 같은 눈과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발등에 파인 상처를 지닌 어머니 ㅡ 이 일관되게 연상시키는, 한없이 연약하나 투명하고 선한 이미지는 때로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작가는 에필로그를 사라진 어머니를 끝까지 지상에 붙들어놓으려는 노력으로 완성한다. 어머니는 그래서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러나 성스러운 손길로 아픔과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원죄에 대한 고해를 들어주는 성모 마리아와도 같은 이미지를 띤다. 화자가 피에타상을 보고 난 뒤에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ㅡ”라고 어렵게 이야기하면서 소설을 마무리짓는 것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상이 지니는 사랑의 상징을 새삼 환기시키는 탁월한 결말이다. 이 소설은 신경숙 소설 중에서도 ‘확실한 성공작’(백낙청)이며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원죄’(이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문득, 우리의 어머니는 어떤 어린 시절을 살고 어떤 꿈을 꾸며 자식들과 남편에게 왜 그렇게 헌신했는지, 또 차마 말할 수 없는 어떤 사랑의 비밀을 가슴에 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부재로 시작한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늦지 않았음을,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통절하게 깨우쳐주는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의 작품 중에서도 확실한 성공작이지만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다. 피붙이 식구들의 끈끈한 정을 이렇듯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작가가 오늘날 몇이나 될까. 더구나 세련된 현대 작가가 ‘눈물 없이 못 읽을’ 장편을 써낼 엄두조차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신경숙이 이런 위태로운 작업을 촌티 없이 멋지게 해냈다는 사실이다. 시골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어이없이 실종됨으로써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딸, 아들, 남편 등으로 관점을 바꾸면서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마다 평생을 자신들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러나 소설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고 산 옛날 어머니’를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 어머니에게도 엄연히 실재했던 자신만의 욕구와 고뇌와 방황을 드러내는 마지막 한 방의 충격을 선사하고야 끝나는 것이다.
- 백낙청(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이 아픈 이야기.
- 이적 (대중음악가,『지문사냥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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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당신도 혹시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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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ktok789 | 2010-09-15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2589430딸 둘에 늦둥이 아들 하나. 아빠와 엄마까지 다섯식구가 둘러 앉아 무엇인가를 한가득 입에 물고 이야기를 나눌때면 엄마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희 할머니가 가끔 그랬다. 다른 건 인색하고 아까워도, 내 논에 물들어가는거랑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인제는 알겠다."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 나의 엄마 ...
딸 둘에 늦둥이 아들 하나. 아빠와 엄마까지 다섯식구가 둘러 앉아 무엇인가를 한가득 입에 물고 이야기를 나눌때면 엄마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희 할머니가 가끔 그랬다. 다른 건 인색하고 아까워도, 내 논에 물들어가는거랑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인제는 알겠다."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 나의 엄마도 역시 그랬다. 다른 엄마들처럼 내 자식들 입을 채워줄 음식을 사는 것은 아까운 것이 없었고, 내 아이들 입성을 챙기는 것도 아까울 것이 없었던 엄마. 엄마는 그렇게 늘 엄마였다. 한번도 엄마는 엄마가 아닌 것이 없었다. 태어날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처럼, 언제나 나에게는 엄마였던, 한때는 소녀였고, 한때는 젊음을 간직한 여인이었던 그녀.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나의 엄마를 다시 꼭 붙들어매게 했던 작품이었다<엄마를 부탁해>는 어느날 서울역의 지하철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 자신들이 잊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를 뒤늦게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모든 소중한 것들이 그렇듯, 내 곁에 존재했을때에는 그 의미를 잊고 살다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달은, 인간이라 이름지어진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아둔함을 지적하는 이야기이자, 그 가치를 잊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누군가의 애원이기도 한 간절한 이야기. 엄마라 불렀고, 엄마라 불리웠던 한 여인을 기억하는 그녀의 가족들이 말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통해, 누군가의 엄마로 고단했던 그녀의 삶들을 그리움을 담아, 그리고 그녀를 되찾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풀어놓는, 바로 당신과 나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한편의 사모곡이기도 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엄마를 부탁해>가 한 평생을 자식과 남편을 위해 오로지 헌신만을 하며 살아온 안타깝고 서글픈 인생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산골에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오남매를 키워내며 독에 양식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누군가의 엄마 속에, 평생을 간직하며 위로받았던 단 하나의 애틋함이 있었음을, 그래서 그녀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홀로 간직한 그 마음만큼은 억척스럽게 밭을 매고 누룩을 띄워 가족을 건사하는 강인함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고 어디에서고 고단함을 기대어 위로받고자 하는 연약한 여인의 마음이었음을 말이다.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존재이다. 어버이날이면 습관처럼 불렀던 어버이은혜의 한 소절처럼 언제나 자식들의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며 말이다. 어린시절에는 그 손길 없이 단 한발자국도 자신이 없었건만, 나이가 들고 성장을 하며 가끔 우리는 그 엄마를 잊고 살아간다. 늘 있었기에 굳이 의식할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이, 너무도 무심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말이다. 누군가의 무엇으로 일평생을 살았으니, 그 자리가 아니면 당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느 곳에도 없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외로운 그녀의 유일한 자리를 우리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단지 그녀를 기억해주는 것으로 그녀를 그곳에 편안하고 행복하게 모실 수 있는데, 이제야 비소로 행복을 느낄 여유를 가지게 된 노년의 엄마들의 자리를 그렇게 빼앗아 버리는 불효를 의식하지도 못한채 저지르는 못난 자식들에게, 엄마는 또 어느날엔가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잊지말고 기억해..
엄마를 지켜줘...
한평생 자식들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일생을 바쳐온 그녀의 검버섯 핀 손을..
이제는 네가 잡고 놓치지 말아줘...
<엄마를 부탁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엄마를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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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깐짜나부리 | 2009-01-26 | 추천226 | 댓글4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픔이라는 감정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난 채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엄마의 자궁을 박차고 나와 첫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자기 앞에 놓여진 삶이라는 기구한 행로를 걸어가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슬픔을 애써 외면하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고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연적으로 슬픔을 함의한다. 신경숙은 언제나 그 본연의 슬픔이라는 것에 정면으로 마주한다. 독자에게 매번 큰 생채기를 남기면서도 그 슬픔의 내면을 깊게 후비 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혹은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마주하면서 파토스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신경숙 소설의 일관된 특징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에 대해서 그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뼈 저리는 슬픔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는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가족과 엄마의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가족이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어지는 소설들이 다 그러하듯 이 소설 또한 그 집필 의도가 분명하다. 소설은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라든가 가족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염원,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엄마를 부탁해'는 이러한 상투적인 주제를 엄마의 실종이라는 꽤 참신한 발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소설의 첫 문장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된다. 가족의 실종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내던지며 읽는 이를 쉽게 도발하는 이 첫 문장은 앞으로 밝혀지게 될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면 더 큰 쓰라림으로 다가온다. 보통 잃어버렸다는 말은 자신의 소유이던 것이 없어졌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지갑을 잃어버렸다'거나 ‘차표를 잃어버렸다’와 같이. 그런데 엄마를 잃어버렸다니. 아니 그 전에 엄마는 과연 소유할 수 있는 존재인가.
어느 날 서울역에서 어이없이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가족 모두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부이다. 가족들은 엄마가 실종된 뒤에 긴급 대책 회의를 갖고 전단지, 신문 광고 등을 동원해 엄마 찾기에 나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엄마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닫게 될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럴싸한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았던 엄마와 마찬가지로 가족들 중 누구도 엄마의 존재를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엄마가 실종되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예비해 놓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만 이들 가족의 비철저성은 엄마의 미약한 존재감과 맞물려 울화통이 터질 만큼 잔인하게 느껴진다.
가족들의 보잘 것 없는 기억에 의존한 엄마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단지를 통해 연락해 온 목격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소를 닮은 눈을 가졌고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으며 슬리퍼로 인해 발가락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팬 상처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도심을 홀로 헤매고 있을 초라하고 가엾은 노파의 모습을 이토록이나 핍진하게 묘사하며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마주하도록 만든다. 물론 목격자들의 말은 사실이라기보다 가족들의 간절함이 빚어낸 환상에 가깝다. 전단지 속의 엄마 사진은 소의 눈빛을 읽어내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최근의 얼굴이 아니었으며 실종 당시 엄마는 파란 슬리퍼가 아닌 베이지색 샌들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닐망정 뼈아픈 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소처럼 우직하게 일만 하고, 자신의 상처는 돌보지 않으면서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하는 존재. 그것이 엄마라 불리는 이의 모습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후회라는 감정을 통해 보여준다. 엄마가 실종되는 날에도 북경을 여행하고 있었던 첫째 딸은 결혼을 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며 엄마 속을 썩이던 과거를 후회한다. 촉망받던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살아왔던 장남은 생활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간절히 바라던 검사의 꿈을 버린 것을 후회한다. 아내의 손길이 없이는 아무 것도 혼자 하지 못하는 남편은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하며 습관처럼 성큼 앞서 걷느라 아내를 인파 속에서 놓쳐버린 그 날을 후회한다. 이들의 뒤늦은 고해성사는 각 장으로 병치되어 드러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들이 후회하는 것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까지는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무신경함과 자그마한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들 가족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짐을 깨닫게 된다.
가족들이 털어 놓는 후회의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들이 과연 엄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엄마가 사라진 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은 한결같이 가족의 굴레 안에서만 규정되어 있다. 그들은 엄마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엄마에게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또한 엄마가 가족의 굴레에서 놓여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결국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다는 것만 기억할 뿐,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결국 앞서 말했던 엄마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인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간다. 엄마의 존재를 가족의 굴레 속에 한정시키는 것은 엄마의 일생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소설에는 장남이 여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또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엄마에 대한 참된 이해의 시작이다. 엄마의 삶의 모습들을 '희생'이라고 규정짓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된 것임을, 엄마는 우리가 소유했다가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후회라는 감정보다 참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설은 모두 4개의 장과 한 개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1~3장에는 엄마의 실종에 따른 남겨진 가족 구성원들의 후회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나타난다. 큰딸, 장남, 남편이 각 장의 주인공이 되어 기억 속의 엄마의 모습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1장과 3장에서 서술자는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그'를 대신해 '너'와 '당신'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효과는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그'라는 3인칭 대명사는 소설 속 인물만을 지칭하지만, '너'나 '당신' 같은 2인칭 대명사는 소설 속 인물과 더불어 독자까지 겨냥하는 효과를 가진다. 2인칭의 사용은 냉엄한 질책과도 같은 효과를 내면서 인물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참회의 장으로 끌어내린다. 이러한 서술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일인칭 시점을 통해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것보다 더 강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4장에서는 그동안 소재를 알 수 없었던 ‘엄마’가 일인칭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의 삶에 대해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강한 충격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삶은 가족들이 기억하는 것과는 많은 점에서 달랐다.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딸로서, 여자로서 자신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 냈던 한 여성의 삶에 대해서 그 누가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었을까. 가족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엄마의 모습은 엄마의 삶 전체에 있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욱신거리고 고단한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새 안에 깃든 가볍고 투명한 존재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비상하는 엄마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짐 지워진 무거운 죄책감을 덜어낸다. 비록 비극으로 종결된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 자그마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평범한 단어 하나가 화려한 수식에 기댄 유창한 문장보다 더 가슴을 울린다. <엄마를 부탁해>는 장편소설답지 않게 단조로운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명쾌하고 화려한 수사도 없지만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정서의 과잉 분출을 애써 억제하고 있는 느낌이지만 작품 전체에 절절한 그리움과 애달픔의 정서가 묻어나온다. 이는 작품이 획득하고 있는 정서적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어느 정도는 소설 속 '엄마'와 닮아 있다. 엄마를 회상하며 지난날을 후회하는 자식들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보통의 삶 속에서 하나의 파문을 일으키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리얼리티를 확보하며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진실 속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나온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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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 2008-12-11 | 추천124 | 댓글2
신경숙만의 문체가 있다. 신경숙만의 향기가 있다. 신경숙만의 우위優位가 있다. 이러한 그녀만의 '문체'와 '향기'와 '우위'는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역시 신경숙이다, 라는 명료한 한 문장으로 말이다. 1985년 등단한 이후 그녀가 쏟아낸 수많은 텍스트들은 앞서 언급한 공식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소설가 신경숙은 자신만의 선연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안정적 창조가다.
궁중 무희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실존 여인 '리진'의 삶을 그린 소설 『리진』으로 그녀의 문학적 역량을 포효했던 신경숙은 불과 1년여만에 전혀 새로운 소재를 담은 장편 한 권을 선보였다. 그녀는 신작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로 인간에게 각인되어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텍스트 위에 감동적으로 녹여냈다.
소설은 총 네 개의 장과 하나의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시선의 흐름을 주도하는 화자가 교체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각 장의 화자는 '너', '그', '당신'으로 바귀면서 '엄마'의 존재성을 입체화한다. 작가는 딸을 '너'로, 아들을 '그'로, 남편을 '당신'으로 설정했다. '나'라는 친숙한 일인칭 주어를 거부한 채 내가 아닌 타인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를 차용한 작가의 고집은 '엄마'와 독자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있다.
작가에 의해 의도된 '엄마'와 독자 사이의 거리감 좁힘은 종내 소설 속 엄마를 독자 '나'의 엄마로 치환시킨다. 곧 소설 속 '너', '그', 당신'은 곧 현실의 '나'가 된다. '네' 회상이 나의 회상이 되고,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며, '당신'의 부끄러움이 나의 부끄러움이 된다. 어쩌면 작가는 작중인물의 호칭을 가공 실명이 아닌 일반 인칭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독자 일갈을 향한 문장의 절제미와 합리성을 의도화했는지도 모른다.
네번째 장 엄마의 회상씬이 인상깊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일인칭 화자로 시선을 주도하는 넷째 장은 엄마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전지적 시각의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벗어난 엄마는 시선을 자유로이 이동하며 자신의 독백을 주도한다. 그 독백에는 엄마로서 살아야만 하는 십자가를 내포한다. 하지만 그것에만 함몰되진 않는다. 여자로서의 비밀과 방황도 함께 있다. 즉 세상 모든 '엄마'가 발현해내는 '신성神聖'과 한 여인으로서 감춰야만 했던 내밀한 '인성人性'을 공존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성과 인성의 교차 합일을 통해 '엄마' 속에 내재한 신의 속성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로 시작하는 에필로그 <장미 묵주>는 소설의 완성도를 오롯하게 만든 텍스트 연금술의 극치다. 소설을 시작한 '너' 큰딸의 시선은 엄마를 잃어버린 먼 훗날의 시점으로 회귀하여 소설을 끝맺음한다. 미켈란젤로의 명조각상 피에타상 앞에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며 애원하는 큰딸 '너'의 마지막 명장면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 손으로 보듬는 모성에 대한 고개숙임이자 찬탄이리라.
대중음악가 이적은 이 소설을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프리뷰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평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모성을 빚진 자식들의 원론적 죄값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단선적 조망은 신경숙 자신의 모든 문학적 역량을 쏟아부어 창조한 경외스런 텍스트에 대한 지엽적 감상의 오류이자 모독이다. 감히 평하건대,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라는 존재로 대변되는 인류 유일무이한 아가페적 사랑에 대한 오마주이자, 온전하면서도 온전치 못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단층 해부한 'CT촬영'이다.
매우 깊은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문장 곳곳에 작정하고 쓴 흔적이 역력하다. 고결한 주제를 뛰어난 연금술로 완벽하게 창조해낸 텍스트에 별 다섯개는 한없이 적게만 느껴진다. 한국 문단에 신경숙이 있어 행복하다.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 엄마, 엄마를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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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nerlee | 2011-04-16 | 추천0 | 댓글0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지하철역에서 실종되고 엄마를 찾아나서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아버지, 아들, 딸, 그리고 망자가 된 엄마의 관점에서 다양하고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엄마가 실종된 상황을 전개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 외면과 내면에 담긴 가족들의 마음을 대비시켜 현대 가족의 아픈 곳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다.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온 엄마, 부모의 기대를 받은 어깨무거운 장남, 사는 게 바쁜 시집간 딸들, 아직 독신인 딸 등은 지은이가 그려낸 다분히 소시민적인 인간상은 바로 우리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들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란 이유로 더 절실히 표현하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뼈속까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창작과비평] 2010 겨울호의 백낙청 교수의 비평은 독서 후 이 작품을 좀 더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 문짝까지도. (120쪽 중에서)
당신은 아내를 잃어버리고 빈집으로 돌아와 이틀 밤 사흘 낮을 잠만 잤다. 아들네에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밤이 되어도 눈만 감고 있었다. 귀가 예민해져 건넌방의 누가 화장실에 가려고 문만 열고 나와도 눈이 떠졌다. 밥생각이 없는데도 끼니때면 다른 식구들 생각해서 식탁에 앉던 당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빈집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160쪽 중에서)
지난여름 지하철 서울역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겐 세살 적 일만 기억났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걸을 수 밖에 없었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 걷고 또 걸었어. 모든 게 다 뿌옜네. 세살 때 내가 뛰어놀던 그 마당이 선명히 떠올랐네. 금 캐러 다니고 석탄을 캐러도 다녔다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그 세살 때 나는 걸을 수 있는껏 걸었네. 아파트 사이를, 풀숲 언덕길을, 축구장을 걷고 또 걸었네. 그렇게 걸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나. 세살 때에 뛰어놀던 그 마당이었을까. (253쪽 중에서)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얼굴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254쪽 중에서)
- 남은 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책-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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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걸쉬리 | 2011-04-10 | 추천1 | 댓글0
1~4장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이 책은 처음에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상에! 엄마를 잃어버리다니...자식들 맞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점으로 부터 자유로운 이 소설은 처음에 낯설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너는 어쩌구 저쩌구, 너희 가족은 어쩌구저쩌구, 너의 오빠는...등의 말투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위해 서울에 상경했다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일보직전, 아버지가 먼저 타버림으로 엄마가 혼자 남겨지게 되고, 엄마는 이후 실종된다. 자식들이 엄마를 찾기 시작하면서, 솟아오르는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들려주는데, 그것은 거의 고해성사와 같았으며, 그들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의 엄마이기도 한 박소녀에 대한 삶이 그려진다.
가난에 찌들려 자신의 꿈을 접고, 모든 인생을 희생으로 감내해야 됐던 엄마. 자식 넷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절, 그토록 온갖 시름과 노동에 시달리더니 결국은 뇌에 이상이 생겨 있는 엄마, 그런 엄마를 자식들은 원래 엄마로 태어난 사람인양 대하고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박소녀. 그녀는 열일곱에 시집을 와 칠순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녀는 글을 몰랐으나 삶의 성찰을 이뤄낸 사람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을 탄생시켰으며, 대가족의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찾아드는 동물이나 사람들을 홀대하는 법이 없었으며, 문풍지를 바르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단풍잎으로 낭만을 누렸던 사람이다. 자식들 앞길을 틔워주기 위해 공부는 또 얼마나 철저히 시켰는지...먹거리를 또한 중요시여겨 맛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으며, 살림 또한 늘 새것처럼 반듯반듯하게 살던 사람이다.
지금은 이런 엄마가 있을까? 이토록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는 이제 더이상 볼 수 없을것같다. 소설에서 자식셋을 낳은 막내딸이 말하듯 셋째가 조금만 더 크면 놀이방에 보낸 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셋은 버겁고, 부엌도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고.
하지만 여기 나오는 엄마, 박소녀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거나 남편이나 자식을 전혀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운명을 억척스럽게 살아가고자 했으며 후회는 없다. 원망도 없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으며,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위대한 사람의 삶이었던 것이다.
책의 맨 앞장에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리스트-라고 적혀있다. 지나고 나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에 사랑하지 못했던 기억은 후회스럽기만하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해도 부족한 시간들이 아닌가. 특히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사랑하고, 내 주위의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되어야 겠다.
- 첫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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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1007kr | 2011-04-08 | 추천0 | 댓글0
직장인으로 살다보니 핑계아닌 핑계로 서점 찾아가기를 멀리 하다 직장에서 이사이트를 찾게 되어 오늘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종종 들러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구입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 합니다.
내나이 쉰의 나이를 훌쩍 넘어 친정부모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새삼 엄마의 존재가 그리워집니다.딸의 입장 며느리의 입장만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에 새삼스럽게 엄마를 생각해보는것이 내딸이 곧 시잡을 갈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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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ck | 2011-04-02 | 추천0 | 댓글0
출간된지 3년만에 이 책을 읽었다.
사실, 고혜정님의 '친정엄마','친정엄마와 2박3일'을 읽고 이와 비슷한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에 읽지 않았다..
엄마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당연시 하고, 엄마가 엄마지 라는 당연한 생각에 반성하는 그런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서울역 지하철에서 잃어 버리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그동안에 고마움, 미안함, 감사함, 당연시 되었던 그 모든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게 한다.
엄마를 잃어 버리고, 신문광고에 광고를 하고, 전단지를 붙히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백방으로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소설은 끝난다...
P 262.
언니.
감나를 옮겨심느라 파놓은 구덩이 속에 그만 얼굴을 처박고 싶었어.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갚리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어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
로마로 여행을 떠난 언니에게 막내동생이 쓴 편지의 내용 일부분이다.
어머니에겐 그 무엇이 아닌 그저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왜 나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난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생각도 안해봤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일전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시골에 계시던 엄마가 몇 일 우리집에 계셨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맛난거 사 먹고, 예쁜옷도 사 입고... 그러면서도 엄마는 우리집에서 설겆이를 할려고 하시고, 청소를 할려고 하시고, 맛난걸 만들어 주실려고 하시고...
자식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랑이라는 걸 안다.
칠순이 넘으신 엄마 눈에는 아직도 내가 그냥 어린 딸로만 생각되시는가 보다...
소설의 4장에서 사라진 엄마가 등장하여 둘째딸의 집, 평생 숨겨온 마음의 의지처인 곰소의 그 남자 집, 남편과 아이들 고모가 있는 고향집,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엄마'의 집을 차례로 돌며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P282
너는 넋을 잃고 성모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한방울 너의 감은 눈 아래로 흘러내렸다. 너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듯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사를 보려는지 사제들이 줄을 지어 네 곁을 지나갔다. 너는 성당 입구까지 걸어나와 긴 회랑과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광장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보내는 부탁
내용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3677258편집/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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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spsshi | 2011-03-31 | 추천0 | 댓글0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리스트
"엄마를 부탁해" 의 가장 첫 페이지에 나오는 명언이다. 어쩌면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서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를 사랑하라고, 가족을 사랑하라고, 지금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와의 기억들은 행복한 추억, 혼나서 펑펑 울던 기억, 열심히 일하던 모습들 등 내 삶의 기록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 삶의 시작부터 항상 함께 했던 기억은 엄마의 기억들이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이후로 그 엄마가 더이상 나의 기억과 함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기억과 엄마의 기억은 별개의 것이 되버렸다. 어머니 배속에서 부터 엄마와 나는 하나였는데. 20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아침에는 집에서 나와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났지만 항상 집으로, 엄마에게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가 돌아오는 곳은 엄마가 계신 집이 아니다. 나혼자 사는 집이다. . .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가끔씩 생각해보면 부자관계 보다 모녀관계는 더 돈독한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은 원체 서로 대화가 없다. 남자끼리다 보니 더 그렇다. 하지만 엄마와 딸은 살갑다. 함께 시장도 가고, 어릴때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서도 굉장히 친해보인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도 그랬고, 내 주위의 많은 딸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그런 모녀관계에서도 서로 모를 수가 있다니... 우리는 얼마나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꿈을 갖고 계시는지.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집이 편한 것은, 가족이 편한 것은, 내 치부를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샤워하고나서 홀라당 벗고 거실을 돌아다니고, 지저분한 모습,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 들 모두 서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정하게 옷을 입고, 깨끗한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게됬던 것 같다.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우리 아버지는 요즘 중국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신다. 분명 우리 아버지는 젊을 적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저 아들을 키우느라고 다 희생했지만, 자신이 이루고 싶으셨던 것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막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떤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 문짝까지도.
잃어버린 후의 후회, 회상... 익숙함에 고마움을 모르다 부재로 인해서 소중함을 깨닫는다.
너, 나라는 대명사로 주인공에 동화되는 것이아니라. 마치 작가가 나에거 "너" 라고 계속 부르는 것만 같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너"에게 하는 말이라고, 너의 어머니께 잘하라고.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라는 말이 참 좋다.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이런 후회를 안하려면 솔직하고 진심으로 살아야겠지.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마지막 이 문장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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