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기도

베트남 참전용사들에게 진 빚

金成官 황금웃음 2010. 6. 24.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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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년 3월 4일. 이동원 당시 외무부 장관은 원드롯 G 브라운 미 대사로부터 한 통의 통지문을 받는다. 이른바 한국의 베트남전 추가 파병의 결정적인 문서로 작용한 '브라운각서'다. 당시 베트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이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독려하며 이에 따른 각종 혜택을 한국측에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한국측에 보내온 것이다.

'브라운각서'에는 전투병 파병에 따른 일체의 비용 제공은 물론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수년 동안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군수협조 조항과 1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차관 제공 등 경제지원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 각서가 전달된 지 몇 개월 후 한국 정부는 비둘기부대 등 종전 비전투부대(의무중대)와 달리 전투병을 베트남에 순차적으로 보낸다. 8년여간 한국은 '평화의 십자군'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국군 31만2천 명을 베트남에 파병, 5,000여 명이 전사하고 수만 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결과적으로 '브라운각서'는 한국군의 첫 해외 참전의 결정적 촉발제로 작용했다.

세월이 흘러 오는 9월이면 우리 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지 40주년을 맞는다. 20대 청년이던 참전용사 대부분은 이제 60대 노인이 됐고, 베트남전도 점차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한국은 참전에 따른 피의 대가로 현재 세계 최강의 강군을 보유하게 됐고 눈부신 경제발전도 이뤘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적지 않은 참전용사는 아직도 참전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참전을 경제적 효과로 따질 경우 간접적 효과가 많게는 5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참전의 경제적 효과 5백조원 실제로 베트남주둔사령부가 철군 때까지 송금한 2억달러 중 40%는 저축됐으며, 사상자 보상금도 1972년까지 6천5백만달러가 지급됐다. 결국 한국이 참전 대가로 얻은 이익은 모두 10억3천6백만달러로 우리 경제는 '베트남특수'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의 값진 희생으로 얻은 경제적 효과에도 불구, 정작 이들에 대한 정부의 보상은 그리 많지 않다.

베트남 파병 이후 강산이 네 번 변했고, 한국과 베트남이 정식 수교한 지도 이미 10여 년이 지났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은 65세 이후부터 월 6만원을 지원한다는 '참전 유공자법'이 전부다. 이 법도 2002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마련됐다. 물론 전사-부상자와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경우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 외에 소외된 참전용사들의 대책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 환자와 팔-다리 등이 절단된 참전용사의 경우 상의용사 혜택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참전용사는 변변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동우 월남참전용사전우회 회장(62)은 "베트남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전우들은 아직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부 전우의 경우 외상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 참전용사는 지금도 허름한 골방에 진지를 구축하고 충혈된 눈으로 '분대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면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값진 희생으로 얻은 경제적 효과를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월남참전 용사는 "일반 병사들의 경우 대부분 베트남전 참전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 경우가 많다"면서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나선 사람에게 당연히 정부는 국가유공자지정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지금까지는 이들에 대한 보상이 미미했던게 사실"이라면서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조국의 부름한편 1990년 중반을 정점으로 침묵을 지켜온 베트남 참전 관련단체들이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모색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베트남 참전 관련단체로는 복지법인 월남참전용사전우회와 베트남참전전우회(회장 최명신), 월남참전전우회(회장 황명철), 사단법인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회장 석정원) 등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복지법인 월남참전용사전우회는 최근 전국조직을 재정비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우선 월남참전전우회는 숙원사업인 참전 관련 단체들의 통합을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또 월남참전용사전우회는 빠르면 올 하반기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영화제작사인 한중엔터테인먼트(대표 진철호)와 전략적 제휴를 했다. 월남참전전우회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의 경각심과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받을 방침이다.

베트남전 참전 일지-1964년 5월 9일         미국, 한국 등 25개 국가에 베트남 지원 호소-1964년 9월 22일        한군군사원조단 140명, 최초 베트남 도착-1965년 3월 16일        공병부대(비둘기부대), 사이공 디안 첫 상륙-1965년 9월 25일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사령관 채명신) 사이공에 창설-1965년 10월 9일        한국군 첫 전투부대(청룡부대), 베트남 캄란 상륙-1966년 9월 22일        백마부대 지휘부, 베트남 닌호아 도착-1966년 10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주베트남 한국군 시찰-1971년 9월 25일        주베트남 한국군, 창설 6주년 기념식-1972년 4월 1일         제1차 철군 완료-1973년 3월 23일        주베트남 한국군 철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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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관련단체 통합 추진"복지법인 월남참전용사전우회 회장 이동우 베트남 참전 40주년을 맞아 베트남 참전 관련단체의 통합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활동해온 베트남 참전 관련단체들이 이제라도 통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통합될 것으로 믿습니다."통합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베트남전 관련 단체는 30여 개에 달했습니다. 말 그대로 난립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적잖은 부작용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는 극단적인 시위 등은 자제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것입니다."베트남 참전 단체들의 가장 큰 숙원사업은 무엇입니까.

"참전용사의 국가유공자 지정입니다. 정부가 베트남 참전 장병을 국가유공자로 대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예산 부담 때문입니다. 하지만 '5-18특별법'에 의해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명예회복되고 '민주화운동보상특별법'으로 민주화 인사들이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데 유독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납니다."전국에 변변한 베트남전 위령비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전국적으로 베트남전 참전 위령비가 9개 있지만, 이는 모두 지역별로 전우들이 십시일반해 만든 것입니다. 각종 위령탑이 조성돼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에도 유독 베트남전 관련 위령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면서요.

"이역만리에서 수많은 전우가 희생됐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와 처분은 형편없는 실정입니다. 영화를 통해 재조명할 생각입니다. 현재 영화제작사인 한중엔터테인먼트사와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