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默言)
1)
싸움이 심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싸움이 너무 심하여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죠. 부인이 지혜로운 수행승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부부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그 스님은 물 한 병을 부인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병에 든 물은 우리 암자 우물에서 길러 올린 특별한 물입니다. 신기한 효능이 있습니다. 집에 두었다가 남편이 싸우려고 덤빌 때마다 이 물을 한 모금 입에 넣으세요. 물을 뱉으면 안 됩니다. 삼켜도 안 됩니다. 그냥 물고만 있으세요. 남편 말이 끝날 때까지 꼭 물고 있어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하세요. 큰 효능이 있을 것입니다.”
부인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남편과 다툼이 시작하면 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말이 끝날 때까지 입에 넣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집안이 조용하여졌습니다. 남편의 공격적인 말도 조금 하다가 그쳐지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신비로운 물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다시 수도승을 찾아 가서 물었습니다. “스님! 이 물은 정말 성수(聖水)입니다. 이 물을 입에 머금은 후부터 부부 싸움이 사라졌습니다.” 수도승이 웃으면서 말했죠. “내가 당신에게 준 물은 신비로운 물이 아닙니다. 보통 물이죠. 당신이 물을 입에 물고 있을 동안에 지킨 침묵이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침묵을 배우세요. 좀 더 조용히 있는 법을 배우세요. 침묵이야말로 평화를 이루는 가장 놀라운 능력입니다.”
2)
침묵은 능력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고 싶습니다. 일본 이야기입니다. 전국시대 어느 마을에 후덕한 성주(城主)가 살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태평성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성주가 말에서 떨어져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외동딸 유미코가 아버지 대를 이어서 성주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선정을 베풀어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가신(家臣)들은 신랑감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유미코는 자기가 직접 신랑감을 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커다란 북통을 무명으로 씌웠습니다. 이상한 북을 만들어 놓고 신랑감을 공개 모집하였죠.
수많은 총각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수많은 총각들 앞에서 북을 치면서 물었습니다. “북소리가 들리나요?” 모두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무명 북이 소리가 날 리가 없죠. 그러나 그 때 한 총각이 말했습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침묵의 소리입니다.” 결국 이 청년이 성주 유미코의 신랑으로 선발되었죠.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
묵언에 대한 한 가지 얘기가 더 있습니다. 젊은 철학자 에머슨이 대사상가인 칼라일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호숫가를 오랫동안 산책하면서도 말이 없었습니다.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지그시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습니다. 두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머슨이 저녁에 기쁜 표정으로 이런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늘 선생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칼라일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에머슨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에게 한 수 배웠네. 자네는 매우 훌륭한 철학자가 될 것일세.” 두 석학은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대화보다 명상(冥想)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침묵의 시간을 깨뜨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밀한 침묵 속에서 두 석학은 깊은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