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기도

저 기적의 수탉은 화려한 수공예품으로

金成官 황금웃음 2011. 5. 18. 07:13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고, 여우가 곶감 먹던 시절에....

포르투갈의 '바르셀로스'라는 지방에 한 이방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이 지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재수없게도 이 이방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착한 사람이었으나 이방인인 탓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형이 집행되기 전, 이방인은 마지막으로 판사를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고 사람들은 그를 판사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 판사는 친구들과 만찬 중이었고 이방인은 다시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나는 무죄하오. 나를 죽이지 마시오."

판사는 감히 자신의 판결에 시비를 거는 이 건방진 이방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범인은 다 그렇게 주장하지." 판사는 명령했습니다. "이 놈을 끌고 가!"

 

그러자 이방인은 식탁 위에 있는 구운 닭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무죄한 나를 처형하면 저 구운 수탉이 일어 나 노래할 것이오!"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판사도 사람들도 모두 웃었습니다.

"구운 닭이 노래를? 춤을 춰도 안 돼! 끌 고 가!"

 

마침내 이방인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구운 수탉이 벌떡 일어나더니.... 가슴을 펴고 핫둘, 핫둘 목울대를 가다듬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꼬끼요오오오~~~"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놀란 판사는 형장을 향하여 나는 듯 달렸습니다. 

"멈추어라~~~ 즉시 멈추어라~~~!!!"

판사는 이방인의 목에 걸린 밧줄을 손수 풀어주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억세게 재수(?) 좋은 이방인은 성모 마리아의 은덕에 감사했고

몇 년 후, 다시 바르셀로스를 찾아 와, 'The Virgin and St. James(Sao Tiago)'라는 기념비를 세웠답니다.

 

방금, 이건... 말도 안 되는 전설.... 이라고 생각하셨죠?

아뇨. 그 이방인이 세운 'The Virgin and St. James(Sao Tiago)'라는 기념비가 당당히 남아 있는데요?

그럼 진실일까요? ㅋㅋ~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하여튼.... 

 

이.... 말도 안 되는 전설...인지, 사실인지 모를 이야기는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저 기적의 수탉은 화려한 수공예품으로 거듭 나 포르투갈의 가정마다 없는 집이 없고,

기념품 가게에서도 포르투갈의 상징으로, 행운의 상징으로 관광객들에게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끝!)

※월남파병과 한국경제※

 

월남파병과 한국경제를 생각해 봅니다.

박정희대통령이 1961년 미,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한국군 월남 파병을 먼저 제안해 파병되기 시작했다.

나라 경제와 안보 생각만으로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그는 월남전은 기회요, 찬스로 보았기 때문이다.

 

박정희대통령이 앞을 내다보는 탁월한 혜안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월남파병으로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며

또 그로 인해 어떻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였을까?

1966년 파월 장병이 국내로 송금한 직접 수입액은

1억 7,830만 달러였다.

 

 

그러나 월남파병으로 인해 베트남에 수출과 군납,

용역 및 건설로 민간 파월 기술자가 국내로 송금한

간접 수입액은 6억 9,420만 달러였다.

 

이는 당시 국내 총 외화 획득에 80%가 되는 큰돈이다.

또, 한국군 파병으로 월남특수가 일어나게 되였고

그로 인해, 차관, 상품 등, 수출 물꼬가 터져

외자 도입액은 32억 8,820만 달러가 되였으며 대미 수출액은

1964년에 3,600만 달러이던 것이

1973년도에는 무려 10억 2,120달러로 28.3배나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돈을 빌려주지 않던 한국에

서방 11개 국가가 서로들 돈을 빌려 주겠다고 나섰다.

다시 말해 월남 파병으로 직접 수입보다 간접 수입이

더 많았으며 국가 신용도는 높아졌다는 얘기다.

박정희대통령의 탁월한 혜안을 볼 수가 있다.

 

주한 미군이 한국에 뿌린 돈이 팔억 달러,

군원이관 중단 액이 9,300만 달러 등, 총체적으로

한국군이 월남특수로부터 거둬들인 경제적 이득은

무려 5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일 청구권 팔억 달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큰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군이 월남 8개 항만 중, 5개 항을 장악하고 있음으로

월남 중요 공사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도맡아 했으며

한진은 월남에서 1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현대는 캄란 부두 공사 500만 달러를 비롯해

연평균 1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액을 올렸다.

 

이러다 보니 외환 보유액이

1964년도에는 겨우 1억 2,800만 달러이던 것이

1978년도에는 무려 49억 4,000만 달러로 폭증,

38.6배나 늘어났으며

북한에 뒤젓던 1인당 GNP는

1975년에는 1.4배 앞섰고, 박대통령 사망해 인

1979년에는 무려 12.8배로 앞섰으며

사상 유래가 없는 연평균 12%의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당시, 가발, 스웨터, 와이셔츠 만들어 팔던

경공업 패턴을 바꾸려 하던 1974년 초.

월남파병은 또 하나의 중동특수라는 신화를 창조하게 됐다.

모래 바람이 부는 열악한 땅, 중동은, 금녀, 금주의 나라로

선진국 근로자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가질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군인 정신으로 무장된 수십만 제대 장병과

수많은 월남참전 용사들이 많았다.

1965년부터 9년간 중동건설 수주 총액은 2,400만 달러였으나,

1974년 8,900만 달러,

1975년 7억 5,000만 달러,

1976년 24억 3,000만 달러,

1977년 33억 8,700만 달러,

1978년 79억 8,200만 달러로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

1965년부터 9년간을 평균으로 계산해서 보면

박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에 무려 2,993배,

거의 3천 배로 늘었다.

 

 

당시 기업이든 개인이든 해외로 나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때, 중동 및 주월 한국군의 선풍적인 인기로

미국, 호주, 남미, 동남아 등, 너도나도 세계로 진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이 나라가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한국경제 성장 동력 엔진을 가동시킨 촉발 제가 된 것이다.

 

선진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야 말겠다는

오기에 찬 그가 아니었던가!!

그는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과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경부고속도로, 댐, 발전소, 제철공장 등,

 

 

단군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한편

기술 전문학교를 세워 수많은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해

국제기능 올림픽에서 매년 금메달을 독차지하여

세계는 찬사와 부러움의 눈으로 한국을 보게 되었다.

 

박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를 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달라고 호소했고

이을 신뢰하고 믿게 된 많은 외국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공장을 지어 실업자 천국이던 이 나라에

갑자기 일자리가 늘어나기 시작,

 

 

 

희망과 꿈을 같게 된 국민은 비전 있는 내일의 삶과 의욕,

자신감이 충만 되어 '주식회사 대한민국'

하나로 모두가 똘똘 뭉쳐

손톱깎이 하나도 만들 수 없던 허약한 나라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일약 공업국가로 발전,

전무후무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놓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월남파병은 박정희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탁월한 혜안으로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수천년 이어져 온 빈곤의 고리를 잘라내고

선진조국으로 가는 기반을 공고히 해 놓은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이 월남에 파병을 하지 않았다면

세계에 진출할 수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으며

오늘날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풍요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 철학과 연계시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정책을 창출해 내던 그의 탁월한 영도력과, 미래 예측 능력,

그것을 어찌 범인들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올해로 50주년,

월남 파병으로 희생된 국군 장병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이글은 지만원 박사님이 쓴 글을 인용해서 쓴 것입니다.>

 

 [글, 옮김, 編: 定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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