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官 황금웃음
2011. 3. 2. 16:22
우봉김씨(牛峰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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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 김씨(牛峰金氏)의 시조(始祖) 김 오(金 澳)는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의 맏아들이다. 그는 고려 성종(成宗 : 제6대왕, 재위기간 : 981∼997) 때 시어사(侍御史 : 어사대에서 백관의 감찰을 맡아보던 관직)로 나라에 공(功)을 세워 수지의후(首知衣候)에 봉해졌다가 다시 우잠군(牛岑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관향(貫鄕)을 우봉(牛峰)으로 삼게 되었으며, 오(澳)의 손자(孫子) 항일(恒逸)이 고려 문종(文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잠성군(岑城君)에 봉군됨을 시작으로, 그의 손자 원길(元吉)이 전공도위(典工都尉)로서 우봉군(牛峰君)에, 관의(寬毅 : 원길의 아들)는 금성군(錦城君)에 질( : 원길의 손자)은 우령군(牛嶺君) 에 봉해졌다. 우봉 김씨는 우령군(牛嶺君) 질(질)이 한림 학사(翰林學士)·문하시중(門下侍中)·시어사(侍御史)·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등을 지내며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고,계속하여 <오대봉군(五代封君)>과 <사대정승(四大政丞)>을 낳아 고려조에서 크게명성을 떨쳤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아홉 명의 판서(判書)와 다섯명의 공신(功臣)을 배출하여 문무(文武)를 겸한 문장도덕(文章道德)으로 가문(家門)의 중흥을 이룩하였는데, 세종(世宗)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내고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에 오른 탁(鐸)이 유명했으며, 성종(成宗)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지복(之福)은 학행(學行)이 뛰어나청백리(淸白吏 : 청렴결백한 벼슬아치)에 녹선되어 명성을 떨쳤다. 한편 1536년(중종 31) 무과(武科)에 급제한 우서(禹瑞)가 갑산(甲山)·부령(富寧)·경원(慶源) 등지의 만호(萬戶)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를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이르렀으며, 도명(道鳴)은 숙종(肅宗) 대 온성부사(穩城府使)와 청주 영장(淸州營將)을, 정명(鼎鳴)은 여산(礪山)·상주(尙州)등지의 영장(營將)을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 언기(彦基), 절충장군(折衝將軍) 언영(彦英) 등과 함께 유명했다. 현종(顯宗) 때 역과(譯科)에 급제한 지남 (指南)은 일본(日本)과 청(淸)나라에 다녀와서「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과「통문관지(通文館志)」를 편찬하여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를 남겼으며, 경문(慶門)은 1712년(숙종 38년) 역관(譯官)으로서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울 때 통역을 맡았다. 그외 진명(振鳴)·언기(彦耆)·언기(彦朞)·언질(彦牲)·상두(象斗)등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날려 전통(傳統)의 가문(家門)을 더욱 빛냈다. |
[人口(1985년 현재)] 2,504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