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월남에서와 같이 한국이 공산화되어도 좋다는 전제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제 얼마후면 한국에 남아있는 핵도 철수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본인도 미국정부측에 몇 번 자제를 호소하고, 부탁도 하여 보았지만,
더 이상 구걸하는 것도 추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도 무엇하지만,
그래도 애원해서 들어줄 희망이라도 보인다면 본인은 어떠한 일이라도 할 각오입니다
이박사님도 아시다시피 본인이나 한국정부가 요구해서 들어줄 단계도 이미 지났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구걸 행각으로 국가의 이미지만
손상을 보는 추한 모습을 또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제인가는 이런 때가 오리라는 생각으로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독자적으로
유도탄 개발과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재미과학자들을 본국에 초청한 것이나 귀국시킨 것도
이런 저의 뜻을 일부입니다
이박사님을 초대하거나 모시지 못한 것은 박사님을
이박사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이휘소박사님, 조국을 건져 주십시오.
74년엔가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이박사를 보호하기 위하여는 60만 대군이라도
동원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진심입니다
우리 민족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이박사의 마음에 달리어 있습니다
그 동안 재미물리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미사일개발부터 서둘렸고,
또 시험도 해 보았지만,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박사님의 힘이 필요할 때입니다
박사님의 처한 위치가 어떠한 지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께서도 조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계시지만은 아니할 것입니다
이박사님께서 조국을 위해, 한 번 일어서 주십시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같은 상황 앞에서,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절대 위기의 상황에서 감히 이렇게 박사님께 애원합니다
박사님의 건강과 가운이 길이 빛나기를 엎드려 비옵니다.>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의 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죽는다...
내가 죽음으로 조국을 살릴 수 있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죽어 조국이 조국으로 남고,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형제,
친구들을 구할 수 있다면...나는 그 길을 택해야 되는 것일까?
하늘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너만이 지금 너의 조국을
구할 수 있다는
명으로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일까?
조국은 나에게 너는 너의 능력을 이때에 쓰지 않으면
너는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살신성인...견위치명...멸사봉공...진인사대천명...나의 운명...
어머니...아내, 아이들, 그리고 형제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는가를 안내하여 주소서...
이 책을 읽으면서 박대통령과 이휘소박사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박대통령의 두번째 편지...
"이휘소 사망..."
UPI, AP, 로이터 통신으로 세계 언론계와 각국 대사관으로
속속 전달되었다
밤 11시 30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긴급 벨이 울리었다
"이휘소 사망..."
박대통령은 전화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전화통을
창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박대통령은 지난 번 밤 1시에 청와대에서 잠시 이휘소를 만났을 때
이미 죽음까지도 각오한 그의 눈빛을 읽었었다
아! 죽음을 각오하고 말없이 다리 속에 숨겨온 피투성이의 메모지를 넘겨 주던 이휘소...
박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당장에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해,
그리고 국내에 있는 미국놈들을 전원 ?아 버려..."
무슨 일이거나 그렇게 해...OOO들...
"이휘소가 죽었습니까? 각하..."
"죽은게 아냐 죽였지"
"누가 죽였습니까?"
"미국이 그랬지, 그 새끼들 청와대를 24시간 도청하지를 않나?"
"이휘소는 미국 CIA에서만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련에서도 인공위성으로 이휘소를 24시간 감시한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이휘소 때문에 신경을 쓴다는 정보도 있고..."
"어쨋거나...이휘소는 미국에서 죽였어...아니, 설령
미국에서 죽이지 않았더라도
보호를 해야지, OOO들...도덕정치를 한다는 놈들이...
그리고 눈앞에 있는 범인도 안 잡았다는 거야..."
"미국대사께서 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쫓아버려...쌍놈의 새끼들...
그리고 내일 아침 내가 직접 미국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겠네"
미군이나 소련이 가진 무기를 우리도 가지면 된다."라고
청와대국무회의에서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이휘소의 장례식이 끝나고,
물리학자들은 일 년만 더 있다 죽었어도 노벨상을 타고 죽는건데...
이휘소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두 달 후에 박대통령은
보국훈장을 수여했다
수상식에는 이휘소를 대신하여 이휘소의 어머니가 받았다
박대통령은 이휘소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참 훌륭한 분이었는데...너무 훌륭한 분이었는데...
너무 아까운 분이었는데..."
라고 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휘소가 박대통령에기 유도탄 및 핵제조개발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를 전후하여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했다
이휘소는 천만 분의 일도 실수할 수 없도록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법과,
만약의 경우를 우려한 모든 준비물을 메모지에 준비하여
놓고 있었다
1978년 8월 26일 @@기지에서 한국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공동제작한 중장거리 유도탄발사 실험이 있었다
과거에 몇 번씩 실패한 경험이 있는 박대통령의
심정이나 과기처장관,
또는 거기 모인 사람들은 초조와 기대섞인 착잡한 심정이었다
첫 번째 대전차로켓 (3.3인치 로켓을 다시 개발) 실험은 성공이었다
두 번째 다연발로켓 (28연발 사정거리 20km) 실험도 성공이었다
마지막 관심의 촛점이었던 장거리유도탄발사실험도 성공이었다
사정거리 150km, 유효사거리 350km로 북한 전역은 물론
소련과 중공의 일부지역까지 영향권이 미치는 것이었다
이 성능은 미국이 개발한 최신 장거리유도탄 나이키미사일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외국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유도탄 보유국이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장거리유도탄을 순수한 우리의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박대통령은 마지막 장거리유도탄발사 실험마저 성공하자
너무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너무 감격하고 있는 박대통령을 바라보던 과기처장관, 국방장관, 관계 과학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대통령은 임원들의 노고를 일일히 치하하고 차에 올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박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다시 이휘소의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의 영상과 어울려
그의 죽음을 생각했다
중구, 일본, 홍콩, 프랑스에서도 해설과 우려를 표명하였다
세계가 경악과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인 것이다
다만 미국만이 침묵했다
침묵한 것이 아니다.미국정부의 훈령을 받은 미국대사'스나이더'는
과기처장관을 자주 방문했고, 박대통령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아예 미국대사와의 면담마저 저절했다
분위기는 냉냉함을 넘어 험악해 지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몇 번이고 독백을 다짐했다
"이제, 이휘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도 중단할 수 없다.
지금 의존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휘소도 남에게 의존만 하면 눈치만 보는 조국을 볼
수 없어 죽을으로써
자립의 기틀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등을 들었으나,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추진을 포기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해,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청와대별실 궁정동 지하에서 죽었다
김재규는 정말 미국 CIA요원이였을까?
한국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김재규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일까?
당시 건설부장관은 ...
"박대통령이 핵개발에 대한 집념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집념 때문에 불의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휘소의 죽음과 박대통령의 죽음이 다 미궁 속에 빠진 채,
누가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역사의
격류 속에 묻혀져 갔다
1980년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원자력연구소와 핵개발공단은 에너지 연구소>로
과학원과 과학기술연구소는 <과학기술연구원>으로 통합되었다
새로 부임한 전두환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에 새로 당선된 레이건을 찾아가
한국핵무기개발중단을 약속하고 댓가로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을 약속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핵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모든 것은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이휘소의 이름도 역사의 무덤 속에 파묻혀 버리었다

글을 마치면서...
제가 이휘소박사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와는 별 관계가 없는 분(전공이 다른 면에서_이라고
생각하였다가
한두 사람에게서 반복하여 듣는 동안 점점 흥미를 느끼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미국을 방문하고, 이휘소박사의 어머님을
10여차례 방문하고,
국립도서실로, 서울대학교도서실로 자료를 찾아 쏘다니며
일년여를 지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는 어떤 책임감을 느끼었습니다
누구라도 이휘소박사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 놓아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최소한의 의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휘소박사에 대하여 쓴다고 생각하니,
우선 물리나 핵, 원자력 등에 대하여 완전한 문외한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꼇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다가 몇 번 중단했었습니다
어떤 월간지에 연재하다가 중단한 이유도 그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전공적인 것은 핵을 전공한 분들이 어느
때인가 정리한다 할지라도
이박사의 생활에 주로 착안한 글은 일단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필생활을 30여년이나 하면서 이처럼 책임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비한 능력이나마 정리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휘소박사는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요,
누구도 감히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의심스로울 만큼
철저한 애국자요.
그러기 때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왜 이휘소박사가 죽었는가?
누가 죽이었는가?
항의 한 마디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휘소박사는 말로 애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묵히 실천했습니다
이휘소박사는 이론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험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그는 실천하지 않는 것도 없었고,
성공하지 않은 실험도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몇 번이나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되새겨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몇 번이나 흥분도 했었고,
몇 번은 비애도 느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앞으로 좀더 치밀한 조사로 보충할 것을 약속 드리며,
내용이 미비한 것이나 미숙한 점은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덧붙여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이휘소박사추모기념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그 기금으로 쓸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 호응을 부탁합니다
1989년 11월
편저자 공 석 하 드림
애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공석하 작가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세계적인 천재 이휘소박사를 떠나보내고도
한 마디 할 수도 없는 우리였습니다.
말만 애국하는 국민 이였지요.
비록 그분이 원하는 것은 못 이루었지만
우린 핵을 보유하지 않고도 통일을 이루어 내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휘소박사를 죽임으로 몰게 한 죄인으로 평생을
살지 않으렵니다. 반드시 승리 할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회원 여러분님께도 감사드립니다.-이룻-